대우자동차가 회생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경영자의 리더십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우차에 대한워크아웃 결정은 대우차를 살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는데 워크아웃 당시의 경영자들이 이를 살리지 못해 자력 회생의 기회를 놓쳤다.워크아웃 결정으로수 십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회생을 위한 자금을 확보한데다, 부실 편법 경영으로 대우를 망가뜨린 원래의 경영진이 물러났으니 그들을 대신해 경영을맡았던 사람들이 확고한 목표 아래 종업원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 대우차 살리기에 나섰더라면 설령 자력 회생이 힘들어 해외에 매각될 운명이었더라도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번에 만났던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선임과장 김대호(金大鎬ㆍ38)는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에서 리더십 부재가 대우차를 망쳐놓았다며 이렇게 탄식했다.
심현영(沈鉉榮ㆍ62) 현대건설 사장을 만난 건 그의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가 알고 싶어서 였다. 살아날길이 있었다는 대우차는 경영자 잘못으로 저렇게 되었으니 비슷한 처지인 현대는 어떻게 될 건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현대건설이 살아난다면 우리 경제의 큰 부담이 덜어진다는 경제
전문가들의진단을 전제로 한 인터뷰였다. 그러니 인사를 나누자 마자 “현대건설이 살아날 수 있느냐”는 질문부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_현대건설을 살릴 자신이 있는가가 제일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는데 정말 대답하기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 파악한 후에야대답할 수 있는 질문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할 거라면 안 만날 걸 그랬다.”
_사장을 맡을 때는 자신이 있어서 맡은 것 아니냐.
“등을 떠밀려 맡은 것이다. 한 달 동안 나는 현대건설 사장을 못 하겠다고했는데 내가 안 맡으면 현대건설을 살리기로 한 계획을 백지화할 수 밖에 없다고 그러더라.
그런 말까지 듣고 보니 자신이 없다고 해서 더 이상 가만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여명이 이 자리에 응모를 했다는데 그 중에는 자신이 있다는 사람도 있었을 것 아닌가.
그 중에서 한 능력있는 사람을 골랐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나로서는 하루 아침에 살린다 못 살린다 말 할 처지가 아니다.”
_그렇게 고사를 했는데도 왜 정부와 채권단은 심 사장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마 내가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데다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사장도 역임했으니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던모양이지. 전 오너들과 그렇게 가깝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됐다는데 그건 나는 잘 모르는 일이고.”
_그래서는 국민들이 불안해 하겠다. 직원들은 더 그럴 것이고. 취임 한 달이 되어가는데 방향은 있어야할 것 아닌가.
“등을 떠밀렸건 아니건 나는 이제 먼 길을 떠난 사람이다. 나는 지금구두끈을 다시 매고 있는 중이다. 좀 더 설명한다면 무엇이 어려운지 파악중이다.
이 회사를 떠난지 5~6년 됐다. 그 간 무엇이 변했는지를 잘모른다. 무조건 살려 놓아야 한다니 살릴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건 현대의 어려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15년 전 이라크에서 공사비 10억 달러를 못 받은 이후 이걸 보전하려고 물량위주로 공사를 하다 보니 수익성이 나빠졌으며, 국내 시장에서도IMF 등을 겪으면서 미분양 상가와 미분양 주택이 많이 생겨나 큰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공사는 수익성 위주로 하고 현금흐름을중시한다는 걸 대원칙으로 세웠다.”
_구체적 방법은 뭔가.
“인력정비 등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이라는 건 비슷한 업무를 하는 중복조직을정리하는 것과 결재과정을 단순화하는 것 두 가지라고 보는데 이 부분에서는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
그런데 인력정리는 무조건 자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건설회사는 설비가 중요한 제품제조회사와는 달리 인력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건설회사의 노하우는 오랜 현장 경험에서 축적되는것이다. 장비만 새로 바뀐다고 경쟁력이 생겨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쫓겨나면 금방 경쟁사로 옮기는 게 다반사인데 쫓겨난 사람일수록 몸담았던 회사에깊은 원한을 갖게 된다. 그러니 함부로 쫓아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_그래서는 구조조정이 될 것 같지 않다. 채권단도 그런 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고.
“너무 구체적인 답이 될지 모르겠다만 1인당 연간 생산성을 15억원으로정하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교육 훈련 연수 휴가 등을 보냈다가 회사의 경쟁력이 살아나 수주가 늘어나면 정식 근무를 시킬 생각이다. 어쨌든일방적으로 사람을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_회사를 그만 둔 예전 임원들을 다시 불러 들여 경영진을 양로원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회사 안팎에서생겨나던데?
“전에는 내가 정 결정을 못 내릴 일이 있으면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자문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분도 돌아가셨으니 물을 곳이 없다.
그래서 과거에 이 회사에서 일했던 분 중 10명을 경영고문과 경영자문위원으로모신 것이다. 나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
물론 책임 질 일이 있으면 내가 지는것이다. 이번에 고문으로 영입한 분들은 모두 백의종군하겠다는 분 중에서 골라낸 분들이다.
떠날 때는 어떤 이유로 떠났건 젊음을 바쳤던 회사를 살려보겠다는충정이 그득한 분들이다.”
_현대가 왜 살아야 한다고 보나. 시장경제원리로는 벌써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경쟁사에서는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겠지만 그건 아니다. 아직 현대를 사랑하는사람이 많다. 지난 번 주총에서 33.3% 동의를 받아야만 소액주주에 대한 감자를 할 수 있었는데 주총 전에 알아보니 24%만 동의했다.
, 1500만주의동의가 더 필요해서 임직원들이 소액주주들을 찾아가서 설득에 나섰더니 5,000만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주주총회 전에는 소란이 있었지만 안건은만장일치로 통과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소액주주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분들에게도 그렇고 일반 국민에게도 죄인이라는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렇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으니 죄인이 아닐 수가 없다.”
_그런 말씀을 하는 걸 보니 인품이 좋으신 모양이다. 혹시 그 인품 때문에, 모나지 않은 성격 때문에현대건설 사장을 맡게 된 게 아닌가.
“인품은 무슨 인품. 자꾸 나보고 내 자랑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아직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있다면 신의는 지킨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 밖에 내가 한 건 현대라는 라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좋은 회사에서 좋은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경영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마흔 하나에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맡았던 그는 86년에는 현대산업개발사장을 맡아 10년 만에 외형을2,500억원에서 2조원으로 키워냈다. 업계에서는 이런 점들로 그가 경영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있다.)
_사실 오늘 심 사장님을 만나고 있는 건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걸로 보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것 같지가 않다. 내 말이 틀렸는지.
“글쎄. 그런데 리더십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강력한리더십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파악해서 새로운 구심점을 찾는 것이다.
두 가지가 같은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강력한 리더십은 효과는 빠른 대신에 인간이 감정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강력한 리더십의 결과로 그 조직에서 쫓겨나거나불이익을 본 사람은 원한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나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 동안의경험으로 봐서 그런 태도가 전혀 틀린 건 아니다.
그러니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거나, 회사발전을 방해한 사람이 아니고는 가급적 포용해서 함께가야 한다. 함부로 리더십을 발휘해 사람을 잘라서는 안 된다. 그건 리더십이 아니다.”
_문제점을 하나하나 파악해 구심점을 새로 찾는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
_조직을 새롭게 만들려면 개개인의 정신자세를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그건 지속적인 대화를통해서만 가능하다.
우선 리더는 조직의 발전방향과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조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야한다.
그게 조직의 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협력과 단결을 유도하는 지름길이다. 아마 앞으로 몇 달간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도 그런 것이다.그게 성공하면 현대건설도 살아난다. 다시 한 번 한국 최고의 기업이 될 기회를 가질 것이다.“
편집국부국장
soong@hk.co.kr
■연재를 마치며
‘정숭호가 만난 사람’이 한국일보 지면개편 계획에 따라 이 번으로 끝이 납니다. 우선 그동안 저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저의 인터뷰 요청에 귀중한 시간을 내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해 3월부터시작된 이 난을 통해 제가 만난 분들은 모두 예순 분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미 이름이 난 분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었습니다.
이름이 나지않은 분들은 대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따뜻함’을 가진 분들이었는데 그 중 몇 분은 제가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리게 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 난을 그만 두면서 그 동안 제가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순 분 모두 살아온사연이 다르니 한 가지로 묶을 수는 없는 일일 터이지만 굳이 나눠본다면 못 할 것도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난 분들에게는 그 이름이 난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 같았고, 그렇지않은 분들을 통해서는 ‘따뜻함과 사랑을 잃지 말아주십시오’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두 가지는 서로 통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든 이웃에 대한 ‘따뜻함과 사랑’ 없이는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또 따뜻함과 사랑을베푸는 것 이상의 사회적 책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국일보 지면에 ‘따뜻함과 사랑’이 넘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 드리겠다는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정숭호 드림.
편집국부국장
so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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