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민주당의정풍 운동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은 소장파의 견해를 어느 정도 수용하여 13일쯤 어떤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그런데 일련의 과정을 보면이해할 수 없는 논리 구조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장파는 안동수 전 장관 임명의 잘못을 거론하면서 청와대 참모와 비선 조직의 책임을묻고 있다.
즉 참모의 잘못으로 이런 파동이 일었으므로 인사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관 임명권자는 대통령 아닌가?
대통령이 와병중이거나중대한 정신상의 장애가 있지 않고서는 모든 책임은 임명권자가 지는 것이다.
아무리 비선 조직이나 참모가 적합하지 않은 인물을 올렸다 해도 대통령이재가하지 않는 한 절대로 장관으로 임명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소장파가 참모의 책임을 묻는 것은 대통령의 무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무능한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 정풍의 주장인가?
아무도 그렇게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잘못을 묻고 싶은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므로 괜히 참모를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가령 경제정책이나 의약분업의 실정에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해당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을 문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정책들은 전문적인 분야로 대통령이 세세한 것까지 알 수는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인사 문제는 다르다.
이것은 타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다. 국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와 그에 적합한인물을 고르는 것이 바로 정치인의 전문 분야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연의 임무가 사회의 여러 기능을 조율하는 것이므로 정치인은 결국 국정의 지표를설정하고 그를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을 등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안동수 전 장관 파동의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책임자를직접 거명하지 못하고 외곽을 때리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의 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난하면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라고비난받는 분위기가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대통령도 공무원중 한 사람 아닌가?
아무리 큰 책임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해도 대통령은 본질적으로여전히 공무원에 불과하다. 공무원이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국민의 질책과 꾸중을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왜 대통령만은예외인양 위에 올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이런 위압적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는 아마도 국회의원에 대한 공천권 행사일 것이다.
당의 총재로서 국회의원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제어장치를 갖고 있는 한 국회의원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의집권당 정풍 운동은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생각한다. 요란한 것 같지만 별것이 아니다.
정풍이 수용되어 청와대 비서관들이 바뀌고 비선이라 일컬어지는라인이 없어진다고 하면 정치가 달라질 것인가?
대통령의 통치권은 건재할 것이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여전할 것이며 당 총재로서의 당 장악력도 별로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앙당과 총재, 사무총장, 원내총무 등이 존재하는 조직과 문화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중앙당을해체하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공천을 중앙당의 총재가 하지 않는다면 권위주의도 파벌도 배금정치도 사라질 것이다.
지역주민의 공천을받아 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된다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을 것이고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정곡을 찔러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더 이상 대통령도 통치권에 안주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눈치를 볼게 아니라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는시대가 빨리 와야 한다.
탁석산ㆍ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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