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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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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고정희

입력
2001.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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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9일 시인 고정희가 지리산 뱀사골에서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 향년43세.고정희는 그가 살던 시대의 우리 문단에서 여류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당당히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극소수의 재능있는 여성 ‘시인’에 속했다.

그러나 그의 시의 한 중요한 질료가 페미니즘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는 또 ‘여성’시인이기도 했다. 넓게는 인간해방, 좁게는 여성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그가 든 문학이라는 칼은 그의 재능과 정열로 벼려져, 싸움을 위한 날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날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의 시가 담고 있는 사회역사 의식의 두 발원지는 전남 해남과 서울 수유리다.그의 고향인 해남이 특히 그의 마당시에서 도드라지는 축축한 남도 가락과 우리말의 전통적 리듬으로써 그 의식의 형식을 이루었다면, 그가 다닌 한국신학대학이자리잡고 있던 수유리는 서유럽 기독교의 해방적 부분과 4ㆍ19 묘지의 저항성으로 그 의식의 내용을 이루었다.

한신대가 4ㆍ19 묘지 지척에 있었다는사실은, 그의 많은 기독교 시가 그 흔한 예배 문학으로 빠지지 않고 인간해방 문학으로 고양될 수 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길지 않은 문학 이력을 통해 ‘이 시대의 아벨’ ‘여성해방출사표’등 10권의 시집을 남겼고, 그의 일주기에 맞춰 유고 시집 ‘모든 사라지는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가 출간된 바 있다. 그 유고 시집의 표제시는 이렇게 끝난다.

“나도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오늘 10주기를 맞는 고정희는 여백으로 남아 있다. 커다란 여백으로 남아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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