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외국산 맥주로 목을 축여야 하다니….”독일국민들은 2006년 월드컵대회 경기장에서 자국산 맥주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매우 불쾌해 한다. 2006년월드컵식탁에는 독일에 있는 수십개 맥주회사 제품 대신 공식스폰서사인 버드와이저 맥주만 제공된다.
독일월드컵조직위의 볼프강 니어스바흐 부회장은 국제축구연맹(FIFA)스폰서의 독점권행사와 현실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 얘기를 꺼냈다. 또 다른 인사는 “FIFA로부터 마케팅독점권을 인정받아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ISL의 파산은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앞으로 개최국의 이해를반영하는 마케팅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기도 했다.
결국 20년 이상FIFA의 마케팅 파트너 역할을 해온 ISL은 완전파산 선고를 받고 문을 닫게 됐다. 그러나 마케팅 업무를 직접 인수하기로 한 FIFA가 약5,600만달러의 재정손실을 입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FIFA의 생명력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축구에서 나온다. TV시청자 증가와방송중계권료 폭등은 잠재적 부가가치에 따른 결과이다.
현재 부동산과 현금을 합쳐 수천억원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FIFA의 돈줄은 술장사에서부터월드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FIFA본부 앞 언덕에는 1,000여평의 포도밭이 있다. 해가 잘 드는 이곳에서 자란 포도는 FIFA가 위탁경영하는FIFA레스토랑에서 포도주로 만들어져 판매된다. FIFA의 가장 큰 수입원은 역시 월드컵.
방송중계권료와 스폰서비 등을 포함하면 수십조원에 달한다.1978년 7,000만 스위스프랑(약 530억원)이었던 방송중계권료 수입이 2002년에는 12억 스위스프랑(약 9,000억원), 2006년에는15억 스위스프랑(약 1조1,000억원)으로 치솟을 것으로 FIFA는 기대한다.
스폰서 계약내용과 정확한 방송중계권료가 공개되지 않고 선정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지않아 FIFA에는 늘 의혹의 시선이 쏠린다.
FIFA는 철저한 스폰서 보호노력으로 반대급부를 제공한다. 이번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기간 중FIFA가 보여준 한치의 예외 없는 스폰서 보호노력에 우리측 관계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올림픽과 달리 월드컵은 FIFA가 대회운영을 완전히 틀어쥐고 있어 국내기업들의소외감이 심각하다. 서울올림픽에 이어 한국월드컵조직위에 참여한 한 직원은 “FIFA는 철저한 비공개주의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조직위의자율성은 거의 없다. 문화행사 하나도 FIFA에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니어스바흐 독일조직위 부회장은 “불만이많지만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FIFA의 지침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불평했다.
FIFA는 개최권을 따내는 게 1차 목표인 유치 신청국들과의 ‘불공정거래’를통해 FIFA의 지배구도를 확약 받는다. 한국월드컵조직위 관계자는 “만약 ‘국제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구가 있다면 FIFA의 독점적 지배구조가 완화됐거나 과징금을 감당 못해 파산했을 것”이라고비꼬았다.
“독점적 지위는 엄청난 투자의 대가로 따낸 것으로 우리들이가져야 할 권리 아닌가.” FIFA의 마케팅 대행사 ISL의 모기업 ISMM의막스 W 구트너 수석부회장은 회사의 파산직전인 지난 달 중순 ISL의 독점적 지위에 대해 정당성을 항변했다.
ISL 파산의 여파 속에서 20년지기로FIFA 성장의 공동주역이었던 FIFA와 ISL의 관계도 틀어졌다. FIFA는 브라질로부터 받은 방송중계권료를 유용했다는 혐의로 ISL과ISSM을 법원에 제소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밀실과 독점’이라는 음지에서 싹이 텄던 FIFA의 성장신화가 서서히 막다른 벽에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이준택기자 nagne@hk.co.kr
■"FIFA은인" "상업화·밀실 추문" 아벨란제 양극 평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성공담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24년간FIFA를 주무른 후앙 아벨란제 명예회장이다.
그의 재임기간에 FIFA는 급격한 상업화와 양적팽창의 길로 들어선다. 장기집권자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듯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양극을 달린다. FIFA의 자금난에 숨통을 튼 ‘생명의 은인’이라는 평가가 그 하나.
그러나 상업화를 내세워 ‘For theGood of the Game(축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하여)’라는 FIFA의 슬로건을무색하게 했다는 준엄한 비판도 뒤따른다.
FIFA 직원들은 한결같이 “FIFA의 새 시대를 연 인물”이라며 아벨란제 명예회장을 떠받들었다. 아벨란제 회장의통치기에 FIFA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비대해졌다. 월드컵과 올림픽 토너먼트 2개에 불과했던 FIFA 주관 대회도 8개로 늘었다.
74년 월드컵때만해도 참가국은 자비로 출전했으나 현재는 FIFA가 모든 경비를 지원한다. 아벨란제 명예회장은 “내가 74년 FIFA 회장이 됐을 때 직원은 7명이었고 사무총장과 그의 부인 그리고 애완동물들이 한 건물에 같이 살고 있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FIFA의 홍보담당 마르쿠스 지글러씨에 따르면 현재 직원은 당시보다 약 20배 증가한 125명.아벨란제 명예회장은 지금도 “1억 달러에 달하는 부동산과 4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수입의 기반을 닦은 것이 나의 가장 큰 치적”이라고 자랑한다.
FIFA의 한 직원은 “아벨란제 회장은 뛰어난 외교수완을 발휘했다”면서 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출전을 이끌어낸 것도 그의 공로라고 설명했다.
반면 아벨란제 명예회장은 지나친 축구의 상업화 추구와 밀실거래로 FIFA 집행위원들사이에서도 비판을 받아왔다.
FIFA에 정통한 한 인사는 “스폰서선정을 둘러싼 잡음과 엄청난 이권사업과 관련한의혹의 핵심에는 아벨란제가 있었다는 게 FIFA에 관여하는 대다수 인사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벨란제 명예회장의 후계자인 조셉 S 블래터 현 FIFA회장도 최근 스폰서선정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FIFA 싱크탱크 'CIES'
CIES(Le CentreInternational d’Etude du Sport)는 막대한 경제적 부를 축적한 FIFA가 스포츠와 일반학문을 연계시키는 학제간(學際間)연구를 위해 96년 스위스의 뇌샤텔대학, 뇌샤텔주와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스포츠학센터이다.
뇌샤텔 시내 중심의 뒤페루라는 대저택에 자리잡은 CIES는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와 관련된 법체계,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1년에 여러 차례 전세계 축구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학술회의와세미나를 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축구협회 임원을 위한연수과정(인텐시브 코스) 운영 역시 CIES의 주요업무. 1997년부터 시작된 인텐시브 코스를 통해 지금까지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아시아축구연맹(AFC)북중미축구연맹(CONCAF)의 임원들이 교육을 마쳤다.
지난해 9월에는 뇌샤텔대학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밀란의 보코니 대학, 잉글랜드 레이체스터의드 몬트포트대학과 연계한 스포츠 국제석사과정(MA)이 개설됐다. 일반대학처럼 학위논문제출과 현장실무를 마쳐야 학위를 얻을 수 있는데 수업료가1만8,000 스위스프랑(약 1,400만원)으로 다소 비싸다.
하지만 FIFA는 98년 6월부터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전FIFA 회장의 이름을 딴 ‘아벨란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셸 젠 루피넨 FIFA 사무총장은 “해마다 우리가 지원해주고 싶은 연구가 많아장학금 지원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CIES의 핵심연구는FIFA의 이해관계와 무관할 수 없다. 스포츠이벤트의 TV 중계권 연구, 스폰서계약과 관련된 법적문제 등 FIFA의 미래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연구에가장 힘을 쏟고 있다.
CIES의 도서관에는 약 4,000권 정도의 관련서적이 비치돼 있는데 CIES에서 근무하는 수잔 잉글씨는 “이들 도서 대부분이CIES의 연구결과물”이라고 말했다. CIES는 최근 FIFA와 함께 의학, 기술, 미디어 등 축구와 관련된 과학적 연구를 시행, 연구영역을 빠르게넓혀가고 있다.
“축구가 단순하다는 점은 영원히 변하지않을 사실이지만 축구를 둘러싸고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날이 갈 수록 복잡해 지고 있다. 우리는 결국 축구와 연결된 복잡한 일을 연구하고 나아가그 것을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장 로이스 주베트 CIES 회장은 CIES의 가치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FIFA의 축구대학인CIES는 FIFA 자체는 물론 축구의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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