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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무능한 지휘관, 무능한 공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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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무능한 지휘관, 무능한 공조직

입력
200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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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중간간부로 있는 친구 K는 요즘 전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모 대기업해외파트에서 일을 하다가 3년 전 지금 직장으로 옮겨 온 K는 “계속 다니면 사람을 버릴 것 같아 그만두어야겠다” 고 신음처럼 내뱉었다.K는 무능하거나 새 자리에 잘 적응을 못하는 친구가 아니다. 문제는 그의 성품이 너무 바르고 진지하다는것이다. 또 아직 ‘민간인적 정서’를 갖고 있는 것도 문제였던 것 같다.

그의 불만은 한마디로 내부에서 매일 부딪치는 공기업의 낭비와 비효율, 부패 등난맥상을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 뭔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데 끌려 직장을 옮겼는데실상은 정반대였다”고 고백한 그는 불필요한 돈을 물쓰듯 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쓰였다고 생각하니울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 탄식했다.

그는 언론에 있으니 이런 일들을 바로잡아달라며 나에게 너무도 간곡히 당부했다.

공기업의 폐해는 그래도 정부의 무능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최근 건강보험 파문을지켜보며 되새기게 된다.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당장 올해만 3조원이 넘는 보험재정적자가 예상됐는데도 보건복지부는 발등의 불인 의약분업 실시에만 급급해대충 넘어갔다.

적자확대가 우려된다는 실무자의 보고를 듣고 장관이 한 일은 보고서를 조작하라는 지시뿐이었다. 뒤를 이어 터져 나온 건강보험료 축소발표의혹은 무능보다 더 무서운 정부의 부도덕성을 온 세상에 드러냈다.

재정이 파탄지경에 있는 것은 건강보험 뿐 아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사학연금 등 이른바 4대 공적연금이 모두 사정이 비슷하다.

이들 4대연금의 1998년 말 현재 잠재적 부채는 200조원을 넘는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도대체 정부가 맡아서 하는 사업과 기금 중에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게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경제에서 시장(市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다. 그러나 정부의 힘이 시장기능보다 강해지면자원의 배분은 정부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그런 정부가 무능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면 자원의 배분은 왜곡되고 국가적 낭비로 이어지게 된다.

충분한검토 없이 무작정 공사를 강행해 1조원이 넘는 국민의 혈세를 바다에 흘려보내고 환경마저 파괴한 시화호 사례가 그 생생한 증거이다. 국책사업이라고하면 부실공사와 비리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반복된 학습효과의 결과물이다.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 가운데 정부의 영향력이 우리처럼 강한 나라는 없다.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정부가 너무나 무능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게 우리가 처한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하면 지나칠까.

군사통치 시절 지휘관을 4가지 스타일로 분류하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군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지휘관은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지휘관’ 이라고 했다.

머리가 모자라고 판단력에 문제가 있지만 의욕은 넘쳐서 이 일 저 일 간섭,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비아냥이다.

정부가 금융개혁, 재벌개혁 4대개혁 조치를 마무리 지었다고 판단한다면 이제 스스로를돌아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지금 같은 관료조직과 공무원들의 자세, 공기업 운영방식을 가지고 우리는 결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얼마전 서울대조동성교수가 발표한 200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64개국중 22위로 나타났으나 정치인과 관료는 27위였다. 어떤 조사방식을썼는지 모르지만 정치인과 관료는 오히려 높게 나온 감이 든다.

경제부장 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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