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고즈넉한 봄날, 젊은 부부가 나지막이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산길을 걸어 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객석의코앞이다.야트막히 둥실 솟아 오른 동산,나무등걸과 낙엽이 먼저 관객을 반긴다. 흙과 솔잎이, 송진 냄새가 연극 무대에 있다. 옛날 그 꿈결 같던 동산이 살아 왔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봄날은 간다’는 현재에 대한 반란이다. VR(가상현실)기법도, 서라운드 음향도 여기엔 없다.
오감을 통해, 잃어버린 시공이 도시 한 가운데서 공감각적으로 오롯이 회복되는 옛 정서를 지켜 보는객석이 있다.
“원래의 무대와 객석의 자리를 뒤바꿨어요.” 연출자 김경익씨가 무대 안팎이 뒤집힐 소극장혜화동 1번지의 조용한 변란을 압축한다.
소나무, 낙엽, 흙, 캐시미어 이불 속, 광목 등 지난 시절 어디서건 흔히 볼 수 있었던 것들에 흙과본드의 혼합물, 압축 스틸로폼 등 인공적 재료를 1톤 트럭으로 세 대 분량 날라왔다.
밤색의 배경에 초록빛이 새로운 2.5㎙ 높이의 둔덕이 무대고, 관객은 산길옆에 도란도란 둘러 앉아서 지켜본다. 봉긋 솟은 둔덕이 한가운데 자리잡는다.
오늘은 어머니의 기일이다.어려서부터 키워 준 여인을 그들은 어머니라 부르며 컸다. 생모는 아니었지만둘은 오누이처럼 자랐고, 이제는 장성해 부부의 연을 맺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내 곁에서 내 목숨을 지켜줬지.” 산길을 걷다, 남편의 울퉁불퉁한 손을 끌어 와자신의 얼굴에 대며 아내는 말한다.
낮게 읊조리던 병약한 아내는그러나 산소에 도착하기 직전 남편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전편에 흐르는 배경 음악은 전통적 자장가를 주조로 작곡가 이태원이 변주해 만들었다. 여기에 신예작곡가 이태원이 해금을 주조로 쓴 ‘푸른 신열’ ‘여우비’ 등의 애잔한 선율이 끊일 듯 말 듯 가세한다.
여기에 비소리, 풍경 소리, 갈대바람 소리. 산새 소리 등 4채널로 녹음된 자연음의 입체 효과가 산길의 정조를 훌륭히 재현해 낸다.
무대는 냄새로 맡는 연극이기도 하다. 서울 근교의 산에 올라가 직접 채취해 온 송진, 고사목의 솔잎등은 울창한 숲길의 정조를 훌륭히 재현해 낸다.
쉬 바래지는 재료의 특성상, 극단측은 1주일에 한 번씩 근교의 산에 가서 채취해 보충, 이 공감각의무대를 살려나갈 계획이다.
배우의 연기가 바로 객석의 코앞에서 이뤄지는 까닭에, 이 무대에는 배우의 거짓 연기를 보고 있다는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오히려 없다.
커다란 둔덕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이 연극에 허여된 객석은 기껏해야 40명 남짓이다. 마당극 무대마냥, 관객은서로 마주 보고 관극하는 경험도 맛보게 된다. 최창근 작, 김소희 이승헌 김미숙 등 출연. 6월 19~7월 15일 혜화동 1번지 연극실험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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