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중국에서 활동했던 조선의용대의 ‘마지막 분대장’ 김학철(金學鐵ㆍ84)옹이 당시 의용대장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선생의 유족을 만나고 의용대 2인자 윤세주(尹世胄) 열사 탄생 기념행사에참석하기 위해 4일 경남 밀양을 방문했다.김옹은 이날 오후 밀양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남북의 왜곡된독립운동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강연회에서 김옹은 “북한 김일성(金日成)의 독립투쟁사가 99.9% 허위듯이 남한의 독립운동사도 고무풍선처럼 부풀려져있다”며 “예컨대 친일파와 일제 군경의 앞잡이들까지 독립운동가로 행세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중국 옌볜(延邊)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김옹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마음의 고향’인밀양에서 약산의 부인 박차정(朴次貞) 여사의 묘소를 참배하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1933년 박 여사와 중국에서 헤어진지 58년만이다.
김옹은 “함남 원산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조선의용대의 탄생지인 밀양을정신의 고향이라고 생각해왔다”며 “평생 방문하고 싶은 밀양을 찾았고 대장님의 유족까지 만나 소원을 풀었다”고 감격했다.
대장 부인에게 뒤늦은 ‘귀국신고’를 마친 김옹은 약산의 막내 여동생 김학봉(金學鳳ㆍ69)씨와도 뜨거운 상봉을 했다. 김옹은 김씨에게 “해방후 50년이 넘도록 독립운동을 우려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50년전에 이미 그것을 버렸으며 지금은 190만 재중동포들을 계몽하는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고 떳떳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김옹은 오후 강연회에서 1938년 10월10일 중국에서 창설된 조선의용대에 입대, 분대장으로 활약하다 일본군과의 교전중 부상을입고 포로로 잡혀 일본 나가사키(長崎) 형무소에 수감돼 왼쪽다리를 절단당한 자신의 일대기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해방 이후 중국에서 곧바로 입북했으나 서울로들어왔다가 월북한 약산이 숙청된 뒤 북한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중국으로 건너가 昌작에 전념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혁명 때 다시 반동분자로 몰려24년 강제노역과 10년 징역을 살기도 했다.
김옹은 1987년 이후 서울에서도 출간된 전기문학 ‘항전별곡’과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등 을 포함해 10여권의 작품을 냈다.
밀양문화원 초청으로 밀양을 찾은 김옹은 5일 조선의용대 2인자였던 석정(石正) 윤세주(尹世胄) 열사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참석한 후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동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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