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준어머니는 딸의 생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너는 1969년 12월 31일에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지.잘못 알고 있었어.네가 태어난 해는 1968년이다.” 그때부터 여자는 조간신문 ‘오늘의 운세’를 펼쳐볼 때 69년생 닭띠와 68년생 원숭이띠를 한꺼번에 봐야 했다. 여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쳐 버린 1년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경란(32)씨의장편소설 ‘우리는만난 적이 있다’(문학과지성사발행)에서 강운은 장난처럼 1년을 잃어버렸다.
나의 존재를 숫자로 확신할 수 있는 생년월일이 잘못됐다니,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강운은이런 질문을 던진다.
세기가 바뀌어도 여전히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이다. 희랍의 철학자들이 던졌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21세기에도 철학교재 1장의 제목이 아닌가.
작가는정체성을 찾는 한가지 방식으로 기시감(旣視感)을 선택했다. 처음 보는 장면, 처음 겪는 일, 처음 나누는 대화를 일찍이 경험했던 것으로 확신하는것.
프랑스어 데자뷔(deja-vu)로 알려진 기억의 착오현상으로, 전생의 기억으로도 여겨지는 것. 신경정신과 의사 김석희가 “나는 당신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전생에서 만났다”면서 강운에게 접근한다. 그는 현재의 운명을 알기 위해선 전생을 경험해야 한다고설득한다.
어머니를따라 아버지가 죽었고, 분신같던 오빠가 훌쩍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강운은 고독했고, 삶의 1년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으며,전생 체험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된 옛 연인 서휘경의 한 마디. “아이들은 날마다 태어나고,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꼭 순번을 기다리면서 차례대로 애를 갖는 것처럼 정신이 없다.” 출생은 반복해서 이뤄진다.인생도 반복된다.
긴 방황이 지난 뒤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린 작가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내 옆에 누가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법”이라고.
문학평론가김치수씨는 “주인공이던진 ‘내가누구인가’라는질문은 문제를 쉽게 해결해 버리는 저급한 소설이 아니라,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 제기에 그칠 수 밖에 없는소설의 운명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작가 조경란씨와 소설 속 강운은 동갑내기다. 69년생 닭띠. 아닐수도 있다. 강운을 통해 조씨 자신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고 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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