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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의 시월평 / '문학사상' 이성선 유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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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의 시월평 / '문학사상' 이성선 유고시

입력
2001.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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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은 그의 첫 시집을 스승에게 바치면서 ‘유고시집을 바칩니다’라고 썼다. 그는 ‘세상의 시집은 모두가 유고시집이지요’라는 말을 거기에 덧붙인다.이 진술이 함유하는 의미는 비교적 선명하다. 한 권의 시집은 어떤 되풀이도 속편도 불가능한 일회적인 미학적 완결성을 보유하며, 시인은 늘 마치 ‘마지막 시집’을 꾸미는 것처럼 시를 쓴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유고시집’은 일종의 비유에 속한다. 그러나 비유에 속하지 않는, 그 말뜻 그대로의 유고 시는 일차적인 미학적 가치 이상의 어떤 문학성을 뿜어낸다.

윤동주의 유고시집 이래 기형도로 이어지는 유고시집들이 머금고 있는 기이한 매력은 서늘한 죽음의 아우라에 둘러싸여 있다.

살아 있기에 결코 엄밀할 수 없는 우리는, 그 죽음의 상징성을 떼어놓고 그들의 시를 읽지 못한다.

시인 이성선의 죽음은, 요절의 이미지로 각인된 윤동주와 기형도의 죽음과는 다르다. 1941년생인 그는 젊은 나이도 아니며, 그의 시 역시 청춘의 부끄러움과 우울로 채색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강원도 땅에서 태어나 교직생활을 하며 그곳의 대지로부터 받은 영감 안에서 일관된 시 작업을 해왔다.

어떤 측면에서 그는 이른바 문단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있었고, 그 주변성의 자연이 간직하고 있는 시적 의미에 관한 투명한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말년에 환경운동에 투신했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가 그 속에서 자라난 강원도의 산과 물이 그의 시가 솟아나는 밑자리였기 때문이다.

‘문학사상’5월호 이성선의 추모특집에 실려 있는 그의 유고 시들은 세상을 뜨기 직전의 시인의 시적 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내재적 가치 평가의 대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 악보’라는 시에서 그는 가을 나뭇잎을 노래한다. ‘길을 가다가 바라본다/ 나뭇잎이 어제는 저기 떨어지고/ 오늘은 여기 흩어져 앉는다/

/ 어느 것은 일찍 지고 어느 것은 늦게 진다’이 단순한 장면들로부터 시인은 ‘여기 떨어지고 저기 앉는 것/ 먼저 지고 오래 남는 것/

/ 그분 피리의 연주가// 이 구멍은 닫히고 저 구멍은 늦게 닫히는// 어떤 음은 길게 다른 음은 짧게 작곡된/

/ 생명 모두는 우주 큰 연주 속의 한가락’이라는 우주의 생명원리를 읽어낸다. 사소한 자연의 현상 안에 깃들어 있는 우주의 원환적 질서를 찾아내는 것은 동양적인 정신의 시적 체현이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생에 대한 시인의 육화한 관념은 자연과 일치된 시간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그 시간의 감각은 이를테면 ‘다리’라는 시에서는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라고 노래하게 만든다.

이성선 시의 이런 투명함은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자연의 원리에 대응하는 맑은 단순성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단순성이란 현대적 삶의 세계 안에서는 어쩌면 공허하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미적 세계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성선 시는 현대적 삶의 복잡성과 아이러니의 저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시에서 보여지는 투명한 단순성의 공간은 서정시가 처음 탄생한 자리였고, 그가 노래하는 우주적 원리는 생명의 보편적 조건이라는 점이다.

가령 그가 무심히 ‘어느 것은 일찍 지고 어느 것은 늦게 진다’라고 노래할 때, 이 단순한 진술은 그의 죽음의 상징성과 겹쳐져서, 그보다 조금 ‘늦게 지게 될’당신과 나에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울림을 전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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