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선의 막무가내식 ‘영해 진입 작전’에 군당국이 끝내 지고 말았다.4일 오후 소흑산도와 제주도 사이의 서남해상. 우리 영해를 침범한 뒤 제주해협을 통과, 청진항으로가겠다고 버티는 북한 상선 대흥단호(6,300톤급)와 영해 밖으로 쫓아내려는 우리 해군과 해경 고속정 및 경비정 간에 10여시간동안의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졌으나 결국은 군당국이 손을 들었다.
대흥단호가 서해 소흑산도 서방 14마일 해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날 오후 2시25분께. 인근해역에서 경비를 하던 해경 경비정에 의해 포착됐다.
정부가 사전 협의와 승인 요청이 있을 경우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통과를 사실상 허용키로 결정한 다음날인데다 전날 제주해협을 통과한 북한 상선 2척이 이날 오전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환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터라 해군과 해경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경은 곧바로 해군에 북한상선의 출현을 통보했고, 이 때부터 합참 지휘통제실과 해군3함대사령부는 비상체제에 돌입, 고속정 편대와 해경 경비정 등 5척을 인근 해역으로 긴급 출동시켰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공해상이어서 북한 상선과 통신하면서 항해를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한참 남하하던 북항 상선이 소흑산도 서방 10마일 해상에서 우리 영해를 침범한 것은 3시15분께.
1~2마일 주변에서 기동을 하던 우리 고속정은 곧바로 경고방송에 들어갔다. 우리 해군과 해경의 ‘영해밖쫓아내기 작전’과 북한 상선의 ‘영해내 버티기’가 시작된 것이다.
“사전에 협의와 요청이 없어 제주해협 통과는 허용할 수 없는 만큼 영해밖으로 쫓아내되 물리적 충돌은해서는 안된다”는 합참의 지시가 현장 고속정 등에 내려졌다.
이에 따라 우리 고속정은 “영해 침범은 불법이다. 영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예인할 수도 있다”는 경고 방송을 수십차례 내보냈으나, 대흥단호는“제주해협을 통과해 청진항으로 가겠다”고 버티며 2마일 가까이 영해를 침범했다.
해군의 고속정 편대가 수십m까지 접근, 근접기동을 실시하자 그제서야 대흥단호는 기수를 서쪽으로 틀어 영해 경계선을 넘나들며 항해를 계속하다 오후 9시30분께 기수를 틀어 제주해협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북한 상선이 6,000톤급 이상으로 워낙 커서 1,000~2,000톤급인 고속정이 예인 등을 시도할경우 물리적 충돌과 피해가 불가피해 군 당국은 속수무책으로 북한 상선의 항해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1999년 6월 북측 군함과의 서해대전에서는 우리 군이 이겼지만, 북한상선과의 ‘한밤의 파워게임’에서는 패배한 것이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NLL은..
북한 선박이 제주해협을 지난 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해 북상함으로써 북측이 다시 NLL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잇다.
NLL은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 협정에는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양측이 해상경계선을 확정짓지 못했기 때문이다.그 해 8월 유엔군 사령관이 남북간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일방적으로 NLL을 그었다. 현재 쟁점이 되는 부분은 동해 NLL이 아니라 도서가 많고 해안선이 복잡한 서해 NLL이다.
정부는 NLL이 지난 48년간 남북간 해상경계선의 실질적인 역할을 해왔고,북한도 이를 묵인해 왔다는 입장이다. 1984년 북한은 수해물자 수송시 양그측 상봉점을 NLL로 우리와 합의했던 전례도 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구역은 해상 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사실상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는게 정부 견해다.
그러나 북한은 현행 NLL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선언했을 뿐이라며 1999년부터 이를 무효화하기 위한 시위를 계속해 오고 있다. 1999년 6월 서해교전 이후에도 'NLL무효 선언'등을 통해 미국과 이 문제를 협상하겠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NLL의 빌미가 된 정전협정을 허물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의도고 풀이된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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