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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佛 샤를 쥘리에 소설 '눈뜰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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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佛 샤를 쥘리에 소설 '눈뜰무렵'

입력
2001.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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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힘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 힘셈은 젊음이 지나간뒤에야 실감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아니, 젊음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힘센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움과 힘셈은 시간의 미화 작용이 낳은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의 젊음은 바스러질 듯 힘겹고, 날것으로 누추하기 십상일지도 모른다.

그 시기는 한 영혼이 세상 속으로 진입해 처음으로 세상과 불화를 겪는 시기다.그러나 그 시기의 기억은 대체로 성년 이후의 기억들보다도 오히려 더 또렷하다.

헤세의 ‘데미안’에서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에 이르는 성장 소설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프랑스 작가 샤를 쥘리에(67)의 ‘눈뜰무렵’(장진영 옮김ㆍ한마당 펴냄)도 성장 소설이다. 이 소설은 부모를 잃고 목동으로 자라던 한 시골소년이 프로방스의 소년 하사관학교에 들어가 그 2년차에 겪은 일들의 기록이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후반, 즉 프랑스가 독일에서 해방된 지얼마 뒤다. 그 시대의 프랑스에 소년 하사관학교라는 것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소년 하사관학교의 생도는 중학생이면서 예비 군인이다. 13~4세의 화자에게,하사관학교의 삶은 달콤함보다는 쓰라림이 더 짙다.

규율은 엄격하되 불합리하고, 거친 식사와 굶주림이 일상사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 내쫓기는 순간그는 피가 물처럼 흐르는 베트남 전선으로 떠나야 한다.

그 공포의 힘으로, 화자는 곡예사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이 학교에서의 삶을 견뎌낸다.물론 이 곳의 삶이 오직 쓰라림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권투 배우기를 통한 담임 하사와의 우애 그리고 그 하사 부인과의 연애는 이 지옥 같은학교 생활에서 화자가 찾아낸 원기소다.

사랑의 기쁨과 불륜에 대한 괴로움, 상급생들과의 불화, 외인부대원들의 난투극,퇴학 위기, 영창 경험, 의무실에서의 고독 같은 것이 이 소설 속에서 화자가 겪는 에피소드들이다.

부재중인 담임 하사를 조롱한 이웃 소대 담임하사와의 드잡이 끝에 영창에 갇힌 주인공은 그 안에서 명상을 거듭한다.

하느님은 정말 존재할까, 그 분은 언제나 선할까, 왜 그 분은 전쟁과 집단수용소와살인을 허용할까,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를 사랑할 권리가 여자에게 있을까, 내가 하느님보다 성모 마리아를 더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질투하지 않으실까,하느님은 낙오자와 성공자를 똑같이 사랑하실까 같은 것이 그의 머리 속을 맴도는 물음들이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을 몰아서 겪어내는 그 한해 동안, 우리 주인공은 사랑에 눈뜨고삶에 눈뜬다. 많은 성장 소설들의 주인공이 그렇듯.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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