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렌드라(55) 네팔 국왕 등 왕실가족 8명이 디펜드라(29) 왕세자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은 1918년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몰살 이후 최대의 왕족 참사로 기록된다. 의식불명의디펜드라 왕세자가 새 국왕으로 지명되고, 국왕의 동생인 갸넨드라 왕자가 섭정을 맡게 됐으나, 향후 네팔 왕실의 운명은 불투명한 상황이다.■사건전모
디펜드라 왕세자는 1일 밤 10시40분께(현지시간) 나라얀히디 왕궁에서열린 왕실 만찬에서 자동소총을 난사한 뒤 자신의 관자놀이에 소총을 발사, 자살을 기도했다.
목격자들은 디펜드라 왕세자가 자신의 혼사문제를 논의하기위해 열린 이날 만찬에 만취상태로 나타나자 “밖에 나가서 누워있어라”는 아이스와랴(51) 왕비의 심한 꾸중을 듣고 나간 뒤 자동소총 두 자루를 들고 되돌아와 이 같은 사건을 저질렀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만찬장에서 디펜드라와 아이스와랴가 격한 언쟁을 벌인 끝에 총기 난사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디펜드라는 전 재무부 장관의 딸인 데브야니 라나(22)와힌두교 의식으로 이미 비밀결혼을 올렸다며 왕에게 이를 승인해줄 것으로 요청했으나 국왕 부처는 이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펜드라는 군 통수권등 왕의 권한을 민정에 이양할 것을 주장하는 등 왕실정책에 대해서도 왕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왕위 승계와정국 전망
왕실의 최고 고문기관인 국가평의회의 세샤르 정 라야마치 의장은 2일 비렌드라 국왕 내외와 니라잔(22)왕자, 쉬루티(24)공주 등 8명이 사망했으며, 디펜드라 왕세자와 쉬루티 공주의 남편등 4명은 군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라마야치 의장은 디펜드라 왕세자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했으나 혼수상태이기 때문에 왕의 동생인 갸넨드라(54)왕자가 섭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따른 정치적혼란으로 1996년 민중봉기 주창 후 각 지방에 산재해 있는 좌익 세력들이 왕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준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네팔공산당등 야당들이 부패혐의를 제기하며 기리아 프라사드 코이랄라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정치적 혼란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상황이다.
■비운의 국왕
아들의 총격으로 숨진 비렌드라는 세계 최초의 힌두교 국왕이자 마지막 절대 군주였다. 그는 1972년 국왕에 즉위, 절대군주제를 통해 권좌를 유지해왔으나 1990년 민주화 세력에 굴복해 입헌군주제와 다당제를도입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네팔에 민주주의 도입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민으로부터는 힌두교의 신(神)인 비슈누의 환생이라는 칭송을받을 만큼 인기와 존경을 받고 있다.
인도 다르질링에서 교육을 받고 영국 이튼 칼리지에서 5년간 유학했으며, 미국 하버드대에서도 1년간 정치학을공부한 그는 1972년 부왕 마헨드라의 사망으로 즉위했으며1971년 네팔의 대표적인 라이벌 집안인 샤와 라나가와의 화해를 위해 현재의 부인과 결혼했다.
■자살 기도한 왕세자
1972년 왕위 계승자로 지명된 디펜드라는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는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온화하고 다감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수학했던 영국 이튼 칼리지의 교수들과 동료들은 그가 A학점을 받을 정도로 모범생이었으며,가끔 폭음하는 습관 외에는 별 흠잡을 데 없는 모범적인 왕실 자제였다고 평가했다.
1990년 네팔 왕실부대의 명예 연대장을 맡았던 그는 외교사절영접이나 회의주재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았으나 왕이 해외방문 등 부재중일 때 왕실의 업무를 총괄했다.
평소 총과 사냥, 가라데무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수준급 헬기 조종실력에다 수영과 골프 등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네팔 올림픽위원회와 체육협회의 후원자 역할을 맡아왔다.
■은둔의 나라 네팔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있는 내륙국으로서 인구의 80%가 농업에종사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왕은 명목상 국가원수직과 군 통수권을 갖고 있으며 총리가 국정 전반의 실권을 갖고 있다.
현 정부는 1999년 9월 총선서 과반수를 획득한 국민 의회당의 코이라라총리가 이끌고 있다. 1769년 구르카 왕조의 나라얀 왕이 네와르족을 정복, 통일 국가를 수립했으며 1814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 영토를할양했다가 1923년 되찾았다.
194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라나 가문이 전제정치를 계속하다 1951년 트루부반 왕이 인도의 지원으로 왕정을회복했다.
최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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