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A씨는98년 IMF사태로 직장에서 내몰린 뒤 수년째 실직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 월20여만원에 의존,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가고있다. A씨는 “밑바닥 생활이나 다름 없다“며 “그러나 무엇보다 주위의따가운 시선이 참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실업과 빈곤
남한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날로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A씨처럼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고려대 윤인진 교수가 국내거주 탈북자 9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55.8%인516명이 무직자로 나타났다. 반면 회사원 153명(16.5%) 자영업자 85명(9.1%) 연구원 16명(1.7%)으로 직장다운 직장을 갖고 있는경우는 30%에도 못미쳤다
윤 교수는 “남북간 취업 환경ㆍ의식 구조 등의 차이로 탈북자들은 경제적 적응에 상당한 곤란을 겪는다”며 “성공한 탈북자는 손가락으로 셀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고대부분은 극빈자로 전락한다”고 밝혔다.
기술이 있는 탈북자들의 경우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않다. “북한에서 자동차 운전을 했다”는 50대 B씨는 남한에서 새로 직업훈련까지 받았으나 몇 년째 막노동을 하고 있다. 자동차 정비업체들이기술은 인정하면서도 채용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
최근 들어 입국자의 40%를 차지하는 여성 탈북자들의실업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식당 종업원 일이 많고 최근에는 일부 젊은 여성의 경우마지못해 술집으로도 진출한다”는 것이 탈북자 후원단체의 설명이다.
▲사회적 냉대
탈북자 C씨는 “직장 동료들 조차 ‘이방인’으로 취급할 때가 많다”며 “주변에서 ‘2등 국민’‘귀찮은 존재’라는 인상을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북한 탈출 과정에서 입은 심리적ㆍ정신적 충격에 시달리는 탈북자가 대부분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중국 등에서 체포조의 추격을 피해 도피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황폐화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탈북자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돼 서울역노숙자 등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90년대 후반 남한에 들어온 D씨는 유흥가를 전전하다 정착금과 보로금 1억여원을 모두 날리고 거처 없이 공사판등을 떠돌고 있으며, 60대 탈북자 E씨는 지난 1월 “나 때문에 북쪽의가족이 걱정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한 탈북자 후원단체 관계자는 “사회적 소외와 냉대로인해 남한 정착을 뒤늦게 후회하는 탈북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일부는 역귀순까지 고민해보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전 북한군 예술선전대 작가겸 연출자인 김성민씨는 1일 숙명여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남한에서 대학을 다닌 탈북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남한국민으로서 정체감 결여와 대학생활에서 언어 문화적 이질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실직과 정신적 상처로 인한 후유증이 부부간의갈등을 유발, 이혼하는 탈북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고려대 윤 교수는 “최근의 탈북자들은 과거와 달리 저학력 중하층 출신이 많아 남한 적응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시민의식과 정부의 정책 등이 바뀌지 않는 한 탈북자문제는 한층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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