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몹시 불었다. 차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르르르….’ 무엇인가 차 창에 부딪히는 것이 있었다.눈으로 식별하기힘든 고운 모래가 안개처럼 다가왔다. 태초에 바람에 실려와 이 곳에 쌓였던 것처럼 모래는 또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창문을열었다. 역시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종달새가 숨이 넘어가는 듯 울어댔다. 순간적인 착각. ‘바람에날리는 모래는 종달새처럼 운다.’
신두리(충남 태안군 원북면)의 사구(砂丘)는 모진 생명력이 회로판처럼 얽혀 있는곳이다. 원래는 모래만 있었다.
물기 하나 없는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지형이 바뀌니 ‘땅’이라고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땅에 생명이 나타났다.
처음 생명을 틔운 것은 보잘 것 없는 풀. 긴 뿌리로 모래를얽어 단단하게 터를 마련한 그들은 푸른 색으로 땅을 덮기 시작했다.
꽃도 피웠다. 야트막한 그늘이 만들어지면서 움직이는 생명이 찾아왔다. 개구리,도마뱀에 이어 종달새, 흰물떼새, 꼬마물떼새 등이 둥지를 지었다.
언제나 바람을 맞고 있어 키 큰 식물은 아예 들어서질 못했다. 그래서 생태계는도화지 같은 평면 위에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 보기만 하면 된다.
사구는 말 그대로 모래언덕. 크게 사막사구와 해안사구로 구분되는데 한반도의 사구는모두 해안사구이다. 파도가 옮겨 놓은 모래가 아니라 바람이 만들어 놓았다.
서해안에만 모두 28곳의 사구가 확인됐고 태안군의 해안선에 16곳이있다. 신두리 사구는 길이 3.2㎞, 폭 1.2㎞, 넓이 384만 ㎢로 한반도의 사구 중 가장 넓다.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하면서도 잦은 북서풍이 해변의모래를 퍼올려 거대한 언덕을 만든 것이다. 학자들은 약 1만 5,000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신두리 사구의 얼굴은 해당화이다. 예전에는 바닷가에 흔하디 흔했던 꽃이 해당화.그러나 그 뿌리가 몸에 좋은 약재라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몽땅 파 가버려 이제는 귀하디 귀한 꽃이 됐다.
신두리의 해당화 군락은 전국에서가장 넓다. 사구 전체의 이 곳 저 곳에 일가를 이루고 붉은 꽃을 피운다. 해당화의 개화시기는 5~7월. 바로 지금이 절정기이다.
해당화 군락 아래로도 꽃식물이 자란다.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 보라색 꽃망울이앙증맞은 갯완두를 비롯해 갯방풍, 모래지치, 동보리사초 등이 모래 바닥에 촘촘히 들어차 있다. 모두 멸종 위기의 희귀 식물이다.
자세히 관찰하면 난장이 식물 사이로 움직이는 것들이 보인다. 가장 일찍 산란을한다는 아무르산개구리를 비롯해 멸종위기에 처한 13종의 파충류에 포함된 표범장지뱀이 산다.
법정 보호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있고, 무지치, 누룩뱀, 유혈목이 등도 발견되고 있다.
신두리 생태여행에서 보너스가 있다면 바닷가이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이 되는 이곳은 너른 갯벌을 자랑한다.
물이 빠지면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이 되고 발아래 갯벌 생태계가 펼쳐진다. 자갈 하나 없는 고운 모래 갯벌이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모두 개구쟁이가 된다.
지난 주 문화관광부는 신두리 사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살아남은 신두리 모래언덕.
‘작은 모래언덕조차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왜 그 넓은 갯벌을 죽이려 하는 것일까?’ 새만금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른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로 당진까지 간다. 32번 국도를 타고 서산을 거쳐 태안에 도착한후 읍내사거리에서 우회전 603번, 지방도로로 갈아 탄다.
원북, 학암포 이정표를 보면서 약 10㎞를 달리다 원북면 직전에서 학암포 방면으로 좌회전,고개를 넘으면 좌측으로 신두리해수욕장 이정표가 나온다.
해수욕장 입구에서 우회전, 태도수산이란 횟집을 지나면 모래언덕이 펼쳐진다. 태안읍 공용터미널(041-674-2009)에서오전 6시 10분부터 하루 8차례 신두리행 군내버스가 운행한다. 신두3리 정류장에서 내려 5분만 걸으면 해수욕장이다.
▼쉴 곳
신두리해수욕장에는 정식 숙박시설이 없다. 몇 곳의 횟집에서 민박을 치지만 바캉스철이아니면 방을 치워놓지 않는다.
인근 학암포에 여관촌(러브호텔 아님)이 있다. 동백장(041-674-7077) 소라장(674-7080) 등 10여곳의 여관이 영업을 한다.
시설이 썩 좋지는 않지만 단체 여행객을 위한 큰 방도 있다. 태안읍에 그린파크장(675-3378) 등 50여 곳의 장급여관이 있다.
▼먹을 것
603번 지방도로 원북면 입구에서 학암포로 길이 나눠지는 삼거리에 삼거리한우시식관(041-672-4540)이있다.
냉동하지 않고 숙성시킨 한우만을 고집한다. 1998년 문을 열었는데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아 항상 자리가 부족하다.
원북초등학교 옆의 원이식당(672-5052)은박속낙지탕으로 유명한 집. 박속을 어슷하게 썰어 양념과 함께 끓이다가 산낙지를 집어 넣는 박속낙지탕은 시원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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