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날인 31일 정부와 여당이 ‘기업경영환경 개선 건의 조치계획’을 발표했지만 마치 ‘빚쟁이’에게쫓기기라도 하듯 서둘러 일을 처리한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5월에 접어들면서 재계쪽에서 민병균(閔丙均) 자유기업원 원장이 ‘시장경제와 그 적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띄우면서 정부에 대한 ‘춘투(春鬪)’를시작했다.
이후 박용성(朴容晟) 대한상의 회장이 정부의 재벌정책을 격렬히 비판한데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례회장단회의 등을 통해 규제철폐를 정부에 잇따라건의하고 진 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비롯한 경제 각료들이 30대그룹 구조조정위원장과의 간담회를 가질 때 까지만 해도 재계와 정부가‘정면 충돌’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간담회 자리에서 경제 각료들이 재벌의 ‘숙원’이던출자총액제한 등 각종 규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나오면서 분위기는 반전됐고 불과 보름이 지나지 않아 최종 결론이 도출됐다.
먼저 싸움을 걸었던재계 일각에서 오히려 “수년간 재벌에 대한 규제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꿈쩍도 않던 정부가 이처럼 쉽게 요구를들어주다니..”라며 의아할 정도다.
여기에는 “바겐세일(IMF) 기간은 끝났다”며 떠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붙잡고 막 싹을 틔우려는 경기의 ‘불씨’를살리겠다는 정부와 재계의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 출범이후 입버릇처럼 주장해온 재벌개혁 ‘ 원칙’의 일각이 무너졌고 재계는 침체된 경기를 핑계로 또 다시 ‘전리품’을건져 갔다.
“정책결정이 잘못되는 것보다 연기되는 것이 더욱 폐혜가많다”는 격언처럼 정부의 빠른 결정이 나온 것이나 재계와 정부의 갈등이 무리 없이 봉합 된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집권 초 재벌에게 서슬 퍼렇게 ‘칼’을 들고 설치다말기가 되면 맥없이 물러서는 과거 정권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다.
조재우 경제부 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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