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는 문을 닫지 않는다. 전 세계를 향해 열려진 설레임의 문이다. 사람은문을 잠그고 저를 스스로 가두어 버릴 때가 있지만 월드컵 축구는 그럴 수가 없다.항상 열려 있는 공간, 비워진 시간, 넉넉한 가슴으로 사람들에게온다. 축구경기장 관람석에 앉아 푸르게 깔린 잔디구장을 바라보면 알게 된다.
거기서 뛰고 쫓고 공을 따라 움직이는 젊은 전사들의 현란한 몸놀림을보면 알게 된다. 가슴이 탁 트이고, 열광하고, 자기 생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알게 된다.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과 외로움, 절망과 좌절 따위가모두 이 잔디위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는 그래서 보는 사람에게 희망의 지평이다. 경기장 관람석에서의 그 현장 열기는물론이려니와, TV중계나 라디오중계를 통해서도 우리를 항상 가슴 뛰게 하는 ‘나’의삶이며 꿈이다.
축구경기를 구경하면서 나는 남몰래 울음을 삼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패배에울었고 승리에도 울었다. 1970년대의 어느날이었든가.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전이 열렸던 서울운동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대표팀과 말레이시아대표팀의 예선 마지막 경기였는데 여기서 우리팀이 이기면 본선에 진출하고, 지면 탈락하는 중요한 일전이었다.
우리팀이 패배하리라고는 결코 상상할수도 없었다. 그날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스탠드 중간쯤에 앉아 흥분된 가슴으로 경기를 지켜 보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가 곧 이어 부슬비를 내리기시작했다. 우리는 비닐우산도 미리 준비하지 못했으므로, 차츰 옷이 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후반전 중반쯤에서 우리팀이 불의의 일격을 받았다.공격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우리 팀이 코너킥을 허용하고, 이를 말레이시아 공격수가 헤딩슛, 골을 빼앗겼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친구가 말했다.“옷도 젖었으니 그만 일어납시다.” 일어나기는 일어났으나 내 다리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나 뿐만이 아니라 앞 뒤 옆의 모든 관객들이 일어서서 경기를 주시하고있었다. 함성과 한숨소리가 경기장을 떠나갈 듯하게 만들었다.
여자친구가 다시 말했다. “축구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나는 건성으로 “둘다 좋아”라고 대답하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경기는 1-0, 한국팀의 패배로 끝났다. 내 머리와 얼굴은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형편없는 몰골이 되었을 것이었다. 여자친구는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날 한국팀의 패배가 내 자신의 생의 패배인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그 아픈 가슴은 그날로 끝이었다. 나는 다시 활기와 희망을 얻어 부지런한 일과속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1970년대의 10년동안 나는 거의 새벽마다 동네 학교운동장에 나가 조기축구를했었다. 어디 출장을 가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빠짐없이 운동장엘 나갔는데, 하루의 시작이 소년과도 같은 정신의 투명함으로 비롯되는것이 좋았다.
한 시간 더 잠을 자는 것보다 한 시간 뛰면서 땀흘리는 편이 훨씬 더 개운한 정신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을 나는 축구의 미덕(美德)이라고생각한다.
뛰는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정신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실컷 눈물을 쏟아 버리고 나면 시원하게 몸과 마음이맑아지는 것처럼, 아름답고 통쾌한 축구 한 게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활기와 청량감을 심어준다.
사람사는 일들이 너나없이 어렵고 힘에 겨웁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이대로 주저앉아버려서는 안된다.
활력과 희망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일년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축구를 계기로 일어서서 나가자.
이성부(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