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기도속에 사시는 우리 어머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기도속에 사시는 우리 어머니

입력
2001.05.30 00:00
0 0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엄마와 헤어질 땐 눈물이 난다’고 저는 시에서 적은 적이 있습니다. 올해로 아흔이 되시니 다들 장수하신다고 입을 모으는데 너무 오래 사는 것 같아 민망하다고 하셨지요?4남매를 남겨 놓고 아버지가 납치되신 후 51년을 신앙에 의지하여 살아오신 어머니, 수녀가 된 두 딸을 만나러 부산으로 기차를 타고 오실 때면 가방이 늘 무거우신 어머니, “큰 수녀의 선녀는 흰 옷을 입어 우아했으며 작은 수녀의 선녀는 좀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지”. 비슷했다는 두 딸의 태몽 이야기를 만나는 이들마다 들려주시는 어머니, 어쩌다 작은 수녀의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면 구청에까지 가서 수십 장 복사를 하여 친지들에게 돌리신다는 어머니께 저는 감사는커녕 못마땅하다는 표현을 해서 서운함을 드렸지요.

지난 달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춘천 외삼촌 댁에 다녀왔는데, 꽃무늬 원피스에 파란 물방울 무늬의 스카프를 매시고, 숱이 없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손녀 향이가 선물했다는 하얀 모자를 쓰시고 막내딸 로사가 미국에서 보낸 고운 반지도 끼시며 한껏 멋을 내셨지요.

그 때도 저는 “좀 수수하게 차려입으시지”했던 게 마음에 걸립니다. 왜 딸들이 먼 데서는 엄마를 그리워하다가도 막상 효도할 기회가 오면 그렇지 못한지 저 역시 늘 반성하면서도 고치질 못합니다.

서울 지리도 훤하시고 여전히 커피, 맥주를 즐겨 드시며 바느질도 가끔 하시지만 “이젠 정말 전과 같지 않아”라고 자주 말씀하시는 어머니. 걸음이 훨씬 느려지시고 등도 많이 굽으신 걸 이번 여행길에서 한 눈에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우이동 오빠내외도 부쩍 왜소해지신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손녀들이 ‘원더 우먼’이라고도 했던 어머니의 육체적 힘은 이제 서서히 약해지고 있지만 일생을 자식들 위해 희생하신 사랑만은 세월이 가도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꽃잎과 꽃씨를 넣어 부쳐주시던 다정한 편지, 하느님도 안 들어 주시고는 못 배길 단순하고 열정적인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에 우리 4남매는 잘 지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언니수녀님은 어쩌다 저와 통화가 되면 “얘, 앞으로 어머니가 몇 번이나 더 기차 타고 부산에 오실까?” 합니다. “언니는 왜 미리 슬퍼하고 야단이야?” 하고 핀잔을 주다가 슬그머니 저도 어머니가 안 계신 세상을 상상해 보며 눈물이 핑 돌곤 한답니다. “험한 모습 안 보이고 자는 듯 곱게 가야 할 텐테…”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그 음성은 아직도 소녀같으십니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실 수가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말을 기억하며 어머니를 불러 보는 5월, 베풀어 주신 모든 사랑에 감사드리며 어머니가 주신 장미 묵주알을 그리움 속에 만져 봅니다. 늘 기도 속에 사시는 어머니를 위해 저도 오늘은 묵주기도를 바치렵니다.

부산 광안리 수녀원에서 작은 수녀 올림

/이 해 인 (수녀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