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가 전세를 몰아내고 있다. 지난해 봄, 서울 강남권에서 시작된 전세계약의 월세전환은 올들어 노원구 상계동, 강남구 대치동 등 대규모 단지로 이어져 서울지역 대부분 소형평형대 아파트에서는 이미 ‘월세 대세론’이 굳어진 상태다.중개ㆍ컨설팅업체인 부동산써브가 최근 강남구, 서초구, 노원구 등 서울지역 주요 대형 단지 내 25평 이하 소형아파트 2,682가구의 임대 계약방식을 조사한 결과, 올들어 월세를 조건으로 내건 아파트는 전체의 40%인 1,085가구에 달했다.
특히 이 달 중 시장에 나온 임대 물량중 월세 아파트는 전체 513건 가운데 404건에 달해 전세를 압도했다.
▲ 왜 월세인가
최근 월세바람의 원인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였던 1998년 초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세입자에게 오히려 이자까지 지불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실제 월세는 98년 맺었던 전세계약이 만료되고 재계약이 이뤄지는 시점인 지난해 봄부터 부쩍 늘기 시작했다. 재테크 측면에서도 현 시점에서는 월세가 유리하다.
IMF 이후 매매가 정체, 저금리, 불투명한 증시가 이어지면서 목돈을 쥐어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또 98년 소형평형 의무비율이 해제되면서 건설업체들이 중ㆍ대형 평형대만 공급한 탓에 서울ㆍ수도권 지역에 소형 아파트가 모자라는 것도 원인이다.
공급량은 부족한데 수도권으로 인구는 계속 유입되면서 수급이 맞지 않아 공급자가 선호하는 월세가 활개를 치게 된 것. 중ㆍ대형 평형대나 지방에서 월세를 찾기 힘든 것은 이런 맥락이다.
▲ 월세는 제로섬 게임?
월세가 확산되면서 세입자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시가 1억원짜리 아파트를 전세 7,000만원에 세들었던 회사원 문모(32ㆍ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집주인의 요구로 지난해 말 보증금 2,000만원에 월 50만원(나머지 5,000만원에 1% 이자 적용)을 내는 조건으로 월세 전환했다.
이 경우 집주인의 투자총액은 아파트값 1억원에 보증금 2,000만원을 뺀 나머지 8,000만원. 따라서 집주인은 8,000만원으로 연간 600만원(투자 수익률은 연 7.5%선)을 벌어 이 돈을 은행(예금이자 연 6.5%)을 맡길 때보다 약 100만원 정도 더 받는 셈이다.
하지만 문씨의 입장에선 월세 전환 이후 보증금을 뺀 나머지 5,000만원으로 월 50만원을 만들 방법이 없어 생활비를 쪼개 월세를 대고 있다.
그동안 7,000만원을 전세금으로 두고 주택구입을 위해 월 소득에서 50만원을 떼서 적립해온 문씨는 내집마련용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더욱 졸라 맬 수 밖에 없다. 만약 집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문씨는 집주인이 이득을 보는 만큼 주택구입비용이 늘어나 어려움이 가중된다.
하지만 문씨 집주인처럼 월세를 ‘합리적으로’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월세가 옛날처럼 높지는 않지만 연 이율로 평균 15%를 웃도는 게 일반적”이라며 “집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월세가 전세보다 2배 가깝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전세 세입자의 등이 휜다는 얘기다.
▲ 공급량 확대만이 해결책
세입자들에게 불리하지만 월세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며 장기 전세가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전세는 사금융의 하나로 ▲ 공금융이 제 기능을 못할 때 ▲ 아파트 매매가 상승으로 빌려서라도 집을 사두면 대규모 시세차익이 발생할 때 ▲ 예금금리가 높아 목돈이 유리할 경우 등에나 유효하던 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대체하고 있는 현재 월세제도가 6개월치 월세만 보증금으로 납부하는 외국과 달리 보증금액이 많은 ‘보증부 월세’여서 당분간 서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측된다. 더구나 우리나라 국민들의 연 소득대비 집값의 비율이 외국보다 2배나 높아 이래저래 서민들은 고역이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소 김성식연구원은 “소득수준을 높이기 어렵다면 주택구입ㆍ임대 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정부당국이 인구집중이 심화한 서울과 수도권에 아파트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려 수요를 해소하는 것만이 근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황종덕기자
lastrad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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