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의 에세이 7편이 실려 있다. 지난 1981년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 전집’에 누락된 글들이다.김수영은 지난 세밑에 작고한 미당 서정주와 함께 지금 활동 중인 시인들로부터 가장 커다란 메아리를 얻고 있는 시인일 테지만, 한국 문학사에서 김수영의 자리가 시에만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문학과 사회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큼하고 통찰력 넘치는 에세이로도 표현할 줄 알았던 산문가이기도 했다.
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것이 상례가 된 50년대 이후의 한국 문단에서 읽을 만한 에세이를 남긴 시인은 많지 않다.
김수영 이후만을 본다면, 기자는 고은 오규원 이성복 황지우 김정환 김형수 정도의 이름을 얼른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의 에세이에도 짙게든 옅게든 김수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창작과 비평’이 ‘발굴’해 실은 그의 에세이들에 별난 점은 없다. 독자들이 그 동안 김수영을 읽으며 익숙해진 자유와 사랑의 갈구, 우리 문화의 후진성에 대한 탄식, 매문(賣文)에 대한 자조(自嘲) 같은 것이, 60년대 문단의 한 돋을새김이었을 그의 ‘해외문학적 교양’과 어우러져 있다.
나라 바깥이라고는 일본과 만주밖에 가보지 못했던 김수영은 외국 문학에 대한 갈증이 대단했던 것 같다.
그는 번역을 자기 생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았고, 지속적으로 외국의 문화 잡지들을 훑었다.
그의 시에서까지 언급되는 ‘엔카운터’지가 그가 마땅히 혐오했을 미국중앙정보국의 뒷돈으로 운영됐다는 것을 생전의 김수영이 알았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는 그런 수상쩍은 잡지에서조차 어떤 진보적 부분을 뽑아내 자기 정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불문학을 전공한 평론가 김현도 자신이 쥘 쉬페르비엘이라는 프랑스 시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이 김수영의 에세이에서라고 고백한 적이 있거니와, 외국 문화에 대한 김수영의 관심은 흔히 아마추어적 경지를 넘어섰고, 그 당시로서는 금제의 공간이었던 사회주의권까지를 포괄했다.
‘창작과 비평’에 실린 그의 에세이 한 대목. “소설이나 시의 천재를 가지고, 쓰지 못해 발광을 할 때는 세상이란 이상스러워서, 청탁을 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런 재주가 고갈되고 나서야 청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무릇 시인이나 소설가는 청탁이 밀물처럼 몰려올 때는 자기의 천재는 이미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세상은 참 우습다. 그렇게 이를 갈고 속물들을 싫어할 때는 아무 소리도 없다가 이렇게 내 자신이 완전무결한 속물이 된 뒤에야 속물에 대한 욕을 쓰라고 한다. 세상은 이다지도 야박하다.”(‘이 거룩한 속물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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