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 일] 백혈병 동생 야속한 죽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 일] 백혈병 동생 야속한 죽음…

입력
2001.05.29 00:00
0 0

1977년, 나는 스무살 의예과 1학년 학생이었다. 첫 여름방학을 맞아 들뜬 기분으로 전주로 귀향했는데 집이 썰렁했다.동생이 아파 그동안 전주 J병원에 입원해있었는데 안 좋아져서 서울 S병원으로 그날 올라갔다고 했다. 며칠 뒤 급성백혈병 진단이 내려졌고 나는 동생을 간호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상태는 좋아지는 것 같았다. 동생은 빨리 퇴원해 빠진 수업을 보충하고 2학기부터 공부를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잠시 퇴원했다가 두번째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을 때 일이었다. 동생이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의사들이 진통제를 처방했으나 듣지 않아 동생은 숫제 발을 구르며 아파했다. 저녁에야 의사들이 척수액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동생 등에 긴 바늘을 꽂았다. 바늘에 연결된 긴 유리대롱에 분홍빛 척수액이 높이 솟았다. 의사가 뇌에서 출혈이 시작됐다는 말을 했다.

혈소판이 떨어져 출혈이 시작됐고 이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정말로 현실일까. 믿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버지, 민관이가 이제 가망이 없대요. 오늘 넘기기 힘들대요. 빨리 올라 오세요.”

아버지는 말을 잃으셨고 “나 못간다, 나 못간다”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자식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볼 엄두를 못내고 자진하셨던 그 피끓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동생은 의식을 잃었다. 다른 병실에서는 고교야구중계소리가 한창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야속했고, 8월의 따가운 햇볕조차도 야속했다.

지방에서 하나둘 형제들이 올라왔다. 밤이 되자 동생이 드디어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숨이 멎었다.

벽제에 동생을 화장하여 뼈를 하늘에 뿌린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와 같이 자던 방에 걸려있던 동생의 하얀 교복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 뒤로 비가 오면 동생의 뼈가 흩날려 내린다고 생각했다.

몇 년 뒤 본과 3학년이 된 나는 실습을 나갔다. 병동에는 백혈병 환자들이 많았다. 어느날 레지던트가 B형 백혈병 환자의 혈소판이 부족해 수혈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B형이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제가 해보지요”라고 말해 버렸다. 680㏄의 피를 뽑아 혈소판을 걸러 4살짜리 아이에게 주었다. 혈소판을 뺀 피를 다시 맞아야 하는데 강의시간이 돼 일부 밖에 맞지 못했다.

강의를 듣는데 어지러워서 엎드려 쉬어야 했다. 불현듯 동생이 세상을 떠나던 날이 생각났고 나는 강의실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서홍관 ·인제대 의대 교수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