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8일 건강보험 재정파탄과 관련, 보건복지부 실무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를 확정한 것은 정책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실무진의 무사안일이나 잘못은 끝까지 추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특히 국민 생활과 직결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전 준비나 대책 등 직무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정책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초적 통계나 분석자료를 부실하게 작성해 정책파탄을 야기한 점은 엄중히 문책해 유사사태의 재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특히 자료를 유출하고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부추긴 사무관(5급)에 대해서는 파면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려 이 같은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의 ‘실무자 징계 반대’와 공직사회의 “실무진에게만 책임을 씌운다”는 반발 기류에도 불구, 7명의 관련 공무원에 대해 징계를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사원이 가장 고민한 대목은 차흥봉(車興奉)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검찰고발 여부. 감사원은 준비없이 의약분업을 밀어붙인 당사자이므로 검찰고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도 했다.
의약분업으로 국민 부담이 줄어든다고 잘못 예측하고, 부실한 재정대책을 발표하는 등 직무상 의무를 태만히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미 공직에서 물러난 점을 감안, 형사 책임을 묻기에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외환 위기로 기소됐던 강경식(姜慶植) 전 부총리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신 실무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는 엄격히 했다. 상관을 기만하거나, 부작용을 고의 은폐?축소했다는 증거도 찾기가 쉽지 않았고, 단순한 준비미흡이나 부실보고 등은 문책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을 예측하고 대응책을 세우지 못한 것은 공무원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행위’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특히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임시방편이나 땜질식 단기처방으로 일관한 직무태만은 묵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감사는 의약분업 시행 과정에서의 준비나 대책을 따지는 직무감사였기에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책 결정권자에 대한 판단의 오판을 덮어둠으로써 책임 소재 규명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풀지 못했다. 또 가뜩이나 동요하는 공직사회가 정책 실패에 대한 실무진 문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주목된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복지부 실무진 "왜 우리만…" 불만
건강보험 재정 파탄과 관련한 감사원의 28일 특감 결과 발표로 징계 등 문책요구를 받게 된 보건복지부 실무책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극도의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문책 대상자로 확정된 복지부 직원들은 침통한 표정속에 일손을 놓았고, 복지부 전체 분위기도 초상집이었다. 일부 당사자들은 오후 한때 잠적하기도 했다.
한 직원은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업무를 이행한 죄 밖에 없는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지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말했다. 다른 직원들도 "의약분업과 의보통합을 결정한 정치권에는 면죄부를 주면서 힘없는 공무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고 항변했다.
또 직원들은 건강보험 재정안정 대책 발표라는 '중대 사안'을 불과 사흘 앞두고 의약분업 및 보험재정에 간여한 실무자 문책은 복지부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정이라며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감사원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는 대세"라며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 직원은 "일부 실무자들이 의약분업을 위한 사전 준비와 보험재정 안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 검토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복지부가 환골탈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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