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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은 세계 금연의 날 - 국립 암센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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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은 세계 금연의 날 - 국립 암센터 르포

입력
2001.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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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두 달은 무척 힘들었어요. 두세 시간 동안 담배를 참고 있노라면 마음이 불안해져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더라고요. 하루 한갑씩 피던 담배를 열흘에 4~5개비로 줄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장마였습니다.병원 전 구역을 금연지역으로 선포한 이후에도 근무하다 말고 병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는데, 장마철에 우산까지 받고 나가려니, '꼭 이렇게 태워야 하나' 서글픈 생각이 나더군요. 한번 꾹 참아보았지요.

4~5일 지나니까 자연 담배를 줄이게 되고, 한두 달 지나니까 금단 증상도 가라앉더군요" 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제14회 세계 금연의 날. 지난 해 10월 국내 최초로 병원 실내·외 전 구역을 금연 지역으로 선포한 국립암센터(원장 박재갑)를 찾았다. 개원 준비차 지난 해 5월부터 병원 기획예산팀에서 근무해 온 오석령(43)씨는 22년 동안 하루 한 갑 이상 피우던 애연가였다. 금연 구역이라는 특수한 근무 환경이 그를 1년 만에 이렇게 변화시킨 것이다. 아직은 회식이나 술자리에서 가끔 담배를 물어 완전한 금연자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아침이나 저녁에 겪던 마른 기침 증상까지 사라져, 누구보다도 금연의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직원 채용 때 흡연 여부를 중요한 조건으로 내세울 만큼 강한 의지로 '금연 병원'을 이끌어 가고 있는 박재갑 원장은 "국립암센터에 근무하면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금연 지역을 선포했다"면서 "누가 누가 아직도 담배를 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금연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절감한다"고 말했다.

비록 한국담배소비자연맹 같은 애연가 단체로부터 항의가 있지만, 국립암센터는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이룩했다. 직원 16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금연 구역 선포 이후 남성 직원의 흡연율이 입사 전 48.5%에서 14.5%로 감소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남성 직원 66명 가운데 현재 흡연자는 9명뿐. 흡연자 32명 중 23명이 금연자 그룹에 속하게 됐고, 흡연자의 경우도 오석령씨처럼 근무 중에는 담배를 필 수 없어 흡연량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직원은 100% 금연하고 있어 암센터 전체 직원의 흡연율은 10%도 안 된다.

담배가 사라진 병원은 확실히 다른 병원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물론 병원 내에는 재떨이가 보이지 않고, 병원 경내에서도 꽁초를 볼 수 없다. 새 병원인데다, 담배연기가 없어서인지, 병원 특유의 숨이 꽉 말힐 듯한 우울하고 칙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8충 입원실에서 만난 환자들도 병원의 분위기만큼이나 밝았다. 폐암, 식도암 등으로 입원 중인 그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담배를 피워 온 골초들이었지만, 역시 병원의 방침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다. 50년 동안 피워오던 담배를 석 달 전에 끊은 이욱기(64)씨는 안동과 대구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다시 정밀진단 중이다.

"정말 후회가 됩니다. 이렇게까지 담배가 해로운 것이라곤 미처 생각 못했어요. 흡연자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어요. 의사들은 왜 '담배를 피우면 당신은 죽습니다'라고 분명하게 일반인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일까요."

폐암치료를 위해 입원 중인 윤석호(65)시는 "기분이 울적할 때 담배는 나에게 위안을 주는 벗이었다"면서 "그러나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사위들 보고는 '목숨하고 바꾸고 싶냐'며 담배를 끊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입원실에 식도암으로 누워있는 윤주영(65)씨 역시 하루에 한 갑씩 피워 온 40년 애연가라면서 "흡연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임을 알려 달라"고 말했다.

30~40년 넘게 담배를 피워 온 환자들이 니코틴 중독으로 나타나는 우울증, 불면증, 초조, 집중력 저하 같은 금단 증상을 이겨내며 금연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환자들의 화장실이나 건물 바깥으로 나가 계단에 앉아 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합니다. 연기와 냄새 때문에 쉽게 적발되지요." 김정화 대장암센터 수간호사는 "담배 연기는 종양호르몬 인자 수치를 올라가게 하므로 본인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해롭지요. 정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병원 밖으로 나가라고 조용히 주의를 줍니다"고 말했다.

환자보다는 환자 가족이나 손님들의 흡연을 막는 일이 더 어렵다. 병문안을 왔다 착잡한 기분에 한 모금 피우려는 손님들을 제지하면 화를 내는 일이 많다. 술을 마신 사람은 막무가내로 담배를 피겠다고 소리를 치기도 한다. 간호사의 힘만으로 이들을 제자하기 어려울 경우, 경비용역 업체의 직원들의 도움을 받는다.

박 원장은 "환자들이 입원할 때 금연 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병원 법규를 마련 중이며, 9월부터는 청소년 교육을 맡고 있는 학교 교장이나 재단이사장을 대상으로 금연정책 최고 지도자 과정을 설치해 청소년의 흡연 인구를 낮추도록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원장는 "전체 암 발생의 20%, 전체 암 사망의 30%가 담배로 인한 것"이라면서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습관적 독극물인 담배를 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1년여 동안 순탄하게 실시돼 온 국내 첫 전 지역 금연 구역. 6월 초 장례식장 개원으로 국립암센터의 '담배와의 전쟁'은 2라운드로 접어든다.

송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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