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28일 탄핵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이날 취한 포고령은 와히드가 여러 차례 경고한 국가비상사태나 계엄령 선포 수준은 아니지만 30일 의회에서 탄핵을 위한 국민협의회(MPR) 특별총회 소집 결의를 강행하려는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 등 정적들을 압박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메가와티측이 이 같은 압력에 굴복하기 보다는 정면 대결에 나설 것으로 보여, 인도네시아의 정정 불안은 본격적으로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와히드는 의회가 자신을 탄핵하기 위한 절차를 강행할 경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충돌을 우려해 이 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포고령을 발동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와히드 측은 특별총회 소집이 결의되면 지난 1998년 5월 수하르토 전대통령 하야를 전후한 시기에 발생한 폭동과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와히드 대통령이 그 동안 경고해온 국가비상사태 대신 그보다 낮은 단계의 조치를 내린 것은 군과 경찰은 물론, 미국까지 반대하고 있어 비상사태를 선포하더라도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밤방 유도요노 정치ㆍ사회ㆍ안보조정장관을 비롯한 측근 각료 7인방이 “구국의 의지가 있다면 순리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며 극구 만류한데다 와히드의 정치적 기반인 동부 자바에서 발생한 테러를 제외하고는 인도네시아 전역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어 명분도 매우 약했다.
와히드의 노림수는 메가와티 부통령등 정적들을 위협해 탄핵 공격을 봉쇄하고, 지난 주 제의한 권력분점을 수용하도록 압박하는데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의회 해산으로 이어지는 강공수를 두기에는 여론이 불리한 만큼 권력 공유 선에서 타협을 보자는 것이다.
26일 밤 와히드측은 메가와티 부통령에 대한 권력분점을 제안하면서 ▦새 연정 구성 ▦6개월 이내 총선때까지 탄핵절차를 포함한 모든 정치일정의 동결 등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바 있다.
따라서 현재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메가와티 측과의 타협 과정에서 와히드가 막판대화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지소식통들은 메가와티 측이 여전히 우세한 여론을 등에 엎고 와히드에 대한 탄핵 절차를 강행할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어 인도네시아 정국은 벼랑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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