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장의 흑백사진이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일생 혹은 수십 년 세월을 다 말해주는 경우가 있다. 누렇게 색이 바래고 귀퉁이는 떨어져 나가고 군데군데 얼룩진 흑백사진.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현대문학사 발행)은 그런 흑백사진 같은 소설이다.소설 제목은 프랑스의 유명 주간지 ‘텔레라마’의 편집국장인 저자 알랭 레몽이 어린 시절 읽은 샤토브리앙의 글의 한 구절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익숙한 사람ㆍ장소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일이라는 쓸쓸한 깨달음이다.
저자 레몽은 집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인 쉰 세 살이 된 지금, 그는 자신이 살았던 고향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느냐는 물음을 친구로부터 지나가는 말처럼 듣는다.
집이야말로 우리 모든 기억의 원천이다. 가난했을지 모르나 결코 남루하지는 않았던 시절에 레몽은 그 집에서 부모와 8남매가 함께 뒹굴었던 시절을 추억한다.
수십 년 전 프랑스의 가족 이야기지만 우리가 겪었던 가족의 삶과 다르지 않다. ‘겉으로 내놓고가 아니라 어물어물 서투르게 속으로’ 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
과묵하다 못해 남처럼 느껴졌던 아버지,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한 켠으로 슬쩍 비켜 서 계시던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꿋꿋이 가족의 의지가 되어주던 어머니의 죽음, 누구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조울증으로 자살했던 누이 아네스.
끊임없이 그들과 작별해야 했던 저자는 이제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고 이야기한다.
책을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교수는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이 소설을 읽다가 수십 년 동안 참았던 눈물을 ‘퍽’ 하고 터뜨릴 뻔했다”고 말했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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