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가 없으면 바이오산업의 미래는 없다. 게놈(유전체) 연구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특허경쟁력의 문제로 산업화에서도 뒤처지고 있다.국내의 유전자 특허출원은 내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양적으로 열세고, 질적으로도 대부분 개량특허에 머무르는 등 뒤떨어지고 있다. DNA칩 같은 첨단 기술은 미국이 원천기술을 독점하고 있어 외화유출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게다가 연구자나 대학, 연구소들이 급변하는 생명공학 특허 기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등 특허관리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한 대학 실험실은 외국에서 쥐 유전자 DNA칩 3개를 사서 좋은 실험 결과를 얻었다. 유전자 수백~수천 개를 한꺼번에 검사하는 DNA칩은 매우 효용성이 높았지만 연구를 계속하지 못했다. 3개 칩에 1만 2,000달러(약 1,500만 원)의 연구비를 소모한 탓이다.
제조 원가의 100~1,000배나 되는 수 천 달러짜리 DNA칩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에게 특허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DNA칩 관련 특허 881건 중 미국이 502건 등록으로 단연 앞서며 어피매트릭스사가 가장 많다.
이 회사는 지난해 칩 20만 개, 2,500억 원 어치를 판매해 세계 시장(3억 달러 규모)의 60%를 장악했으며 2월 현재 기업가치가 약 4조 원에 달한다. 이 기업은 반도체 제조에서 유래한 광식각(光蝕刻) 원천특허를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며 조금이라도 비슷한 연구개발에 대해 바로 소송을 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게다가 값싼 저밀도 칩 외엔 아예 기술이전을 하지 않는다.
생명공학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특허가 제일 중요하다. 바이오 산물은 일단 상품화하면 누구나 쉽게 모방생산할 수 있고, 제조 원가는 싼 반면 초기 연구개발 단계에 막대한 투자비가 들고 시장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특허 보호만이 유일한 산업화 방법이다. 1g에 수억을 능가하는 고부가가치 생명공학 상품이 있는 것이 모두 특허 덕분이다.
바이오벤처들은 가장 먼저 특허부터 검색한다. 업계에선 흔히 “(특허를)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1998년 미 바이오기업 셀프로는 존스 홉킨스대학과 특허소송에서 패소한 후 회사를 청산했다.
국내 DNA칩 특허출원은 최근 2~3년에 집중돼 있고 자궁암이나 위암 진단용, 유방암 분석용 등 응용특허에 머물러 있다. 유전자 특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전자 특허 출원이 1999년 401건, 2000년 631건, 2001년 4월까지 284건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외국인 특허가 60%가 넘는다. 내국인이 출원한 특허의 질적 수준은 더욱 문제다.
특허청 유전공학과 이성우(李成雨) 과장은 “내국인 특허는 대부분 개량특허이거나 용량이 작은 미생물 유전자특허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신약개발에 핵심인 인간유전자특허 출원이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여태까지 외국보다 앞서 물질특허(유전자특허도 포함)를 출원한 예가 없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특허관리가 부실하다. 특허청의 한 심사관은 “생명공학기술이 숨가쁘게 발전하면서 심사기준도 계속 바뀌고 있는데 국내 연구자들의 출원 내용을 보면 이런 변화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 했다.
또 미국이 1980년 이미 정부예산을 지원받은 연구성과를 연구기관에 돌려주도록 법제화한 반면, 우리는 아직도 국립대 교수의 특허를 국가소유로 규정해 놓는 등 연구성과를 경제적 가치창출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특허관리에 대한 제도적 보완 없이 바이오시장의 황금열매는 없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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