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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여야 경제포럼은 무조건 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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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여야 경제포럼은 무조건 잘한 일

입력
2001.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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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읽었는지 들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미국의 어느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있는 학교에 막 부임한 백인 선생님이 겪었다는 이야기다.아이들에게 시험을 보이는 날이었다. 서로 보고 쓰지 못하도록 여느 때처럼 책상들을 뚝뚝 떼어놓은 다음 시험지를 나눠주며 선생님은 "오늘 시험은 좀 어려운 편이니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모두 책상을 가까이 붙이곤 빙 둘러앉았다. 이게 무슨 짓들이냐 하며 역정을 내시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라면 모두 힘을 합해 함께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특별히 어려운 문제를 낼 때면 학생들에게 조를 편성하여 함께 풀 것을 제안한다.

어려운 문제를 혼자 붙들고 밤새도록 끙끙 맨들 문제의 실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한다면 그것이 과연 효과적인 학습방법인가는 한번쯤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여가며 문제의 해결책을 찾다보면 자연스레 서로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학교에서 철저하게 혼자서 문제를 풀도록 배웠다. 하지만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즉시 훨씬 더 자주 남들과 함께 일하는 환경에 놓인다.

회사에서 같은 부서의 다른 직원들과 아무런 관련 없이 혼자 작업을 하게 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의심스럽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대부분의 학자들은 제가끔 연구팀을 구성하여 함께 문제를 푼다. 학교 시절 거의 한번도 공동으로 문제를 푸는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이 갑자기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 적지 않게 당황하게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함께 문제를 푸는 것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얼마 전 여-야-정 3자가 모여 국가경제정책 토론 포럼을 가진 일이 있다. 여야 경제통 의원 12명과 주요 경제부서 장관들이 밤을 새워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뿌듯했다.

포럼이 끝난 후 내놓은 공동발표문의 내용이 미흡하다고 질책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나는 그저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코끝이 찡하도록 고맙다.

여러 가지 복잡한 민생 문제들에 대한 대책들을 함께 준비하라고 만들어진 정당들이건만 엉뚱한 일에나 함께 모여 언성을 높일 뿐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그들이 어떻게 갑자기 이처럼 '성숙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진념 부총리의 공이 크다 들었다. 하지만 그의 청에 흔쾌히 응한 여야 의원들의 나라 사랑에 머리를 숙인다.

생물학자들은 유전자의 활동을 종종 의정활동에 비유한다. 얼마 전 인간 유전체 구조가 처음으로 발표되었을 때 밝혀진 사실들 중 두 가지가 특별히 큰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우리 인간의 유전체가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유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하찮은 초파리와 비교해도 유전자 수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용안에 상당히 깊은 손톱자국을 남겼다.

또 한 가지 사건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 유전자들의 족보였다. 의외로 많은 유전자들이 박테리아에서 온 것이라는 발표는 많은 이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다. 우리 인류가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온 약 600만년의 세월은 물론이고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 그 오랜 세월 동안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잡은 유전자들이 지금 우리 몸 속에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유전자들간의 갈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유전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서로 족보가 다른 유전자들이 모였는데 어떻게 늘 마음이 맞을 수 있겠는가.

유전자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우리 사회의 국회의원들이 겪는 고민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국회의원이란 모름지기 표에 살고 표에 죽는 존재이다 보니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는 일처럼 중요한 것은 사실 없다.

우리 고장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 의원을 다음에 또 뽑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모든 의원들이 항상 회기 마지막 날 지역구에 다리나 건물을 짖는 안을 슬며시 끼워 넣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나라꼴이 뭐가 될 것인가.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의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이 있다면 왜 진작에 이런 일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토론문화가 없다고들 한다. 일전에 새만금토론회에 참석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개탄을 금하지 못했으리라.

너무 늦게 마주 앉기 때문에 서로 다툴 수밖에 없다. 마음속으론 이미 결정을 하고 조금도 내 것을 뺏기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와 앉아 무슨 토론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가 생기기 한참 전부터 하릴없이 만나야 한다. 필요하다고 느껴 마주 앉으면 이미 늦었다. 꼭 결론을 봐야할 문제가 없을 때 만나 싸움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같이 크며 늘 다정스레 물고 뜯는 강아지들처럼.

최재천 서울대 생명공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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