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25일 발표된 LG경제연구원의 '외환위기 이후 소득격차의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경기가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분배 구조는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일례로 소득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가 97년의 0.283에서 98년 0.316, 99년 0.320, 2000년엔 0.317로 커짐으로써 불평등이 심화했다.
빈부격차가 커진 주 요인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학력간·직종간 임금격차 확대였다. 사무직은 생산직에 비해 임금을 97년에 1.56배 받았으나 98년엔 1.63배, 99년엔 1.7배 받았다.
또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전엔 90% 받았으나 이젠 80%를 받는다고 한다. 실제는 더 적을 것이다.
한편, 실업률이 10% 늘었을 때 소득불평등도는 1.4% 증가하나 학력간 소득격차가 10% 증가할 때 불평등도는 3% 증가하므로, 학력 변수가 소득불평등에 큰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다.
1997년 이른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을 타게 되었다. 개방화, 탈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등으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대외적으로는 자주성 상실과 국부 유출, 대내적으로는 대량 실업과 '20대 80 사회'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그간의 개혁 과정에서 부분적이나마 사회안전망 구축 시도가 있었고 재벌 체제의 폐해를 고치려는 노력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작업이 너무 불충분하거나 핵심을 비낀 나머지 긍정적 결과보다는 부정적 결과가 더 많이 나왔다.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도 바로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보고서가 지적하는 문제 이외에도 소득불평등과 관련, 몇 가지를 더 생각해보자.
첫째, 실업자와 비정규직 등이 노동력의 80%를 차지하고 정규직 노동자가 20%를 차지함으로써 사회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20대 80 사회'에서는 20%의 소수가 사회적 부의 80%를 차지하게 되고 80%의 다수가 그 나머지인 20%를 놓고 아귀다툼해야 한다.
둘째, 주거비, 육아비, 교육비, 의료비 등 필수적 생활 비용이 급상승하였다. 이러한 비용은 빈부층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닥치는 것인데 같은 부담이라도 가난한 층에게는 부담이 더 크다.
예컨대 주거비는 전세가 급상승하거나 월세로 전환됨으로써 30% 이상 올랐고 교육비는 사교육비 증가로 20% 이상 올랐다.
셋째, 소득재분배 기능을 수행해야할 조세 정책의 실패가 소득불평등을 강화한다. 조세 정책은 원래 한편으로 정부 재정의 확보, 다른 편으로 소득재분배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소득세와 상속세의 누진제 시행이 불철저하고 나아가 탈세, 누세가 더욱 교묘한 형태로 이루어짐에 따라 '유리 지갑'을 가진 근로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철의 장막' 뒤에 가려진 자영업자나 자유업자들은 더 적은 세금을 냈다.
게다가 그 세금은 가난한 자들에게 쓰이기보다는 부실 기업 구제와 자본 수익 향상에 더 많이 쓰였다. 넷째, 교육 기회나 정보 접근의 불균등도 빈부 격차 심화에 기여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대학 진학에 있어 사교육비 지출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부잣집 자녀들이 더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다.
'수십억 기여입학제' 안이 나오는 것은 차라리 우리 사회 속에 감추어졌던 '계급 사회'의 면모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또 정보화와 관련해서도 컴퓨터 구입이나 사용 능력의 차이, 지적재산권 효과 등으로 빈부 격차는 더 커진다.
요컨대, 앞으로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 및 노동 기회 균등화, 학력 차별 타파, 기본 생활비의 사회보장화, 조세 정책 민주화 등 여러 과제를 다각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강수돌·고려대 교수ㆍ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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