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4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의 일정을 밝힐 것을 촉구한 것은 교착 상태에 빠져있는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김 대통령은 그 동안 김 위원장의 답방 문제를 언급할 때 ‘상반기로 예상’ ‘금년 내로 올 것’이라는 우회적 표현을 써왔다.
따라서 김 대통령이 처음으로 김 위원장에게 직접 답방 일정 발표를 촉구하고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계기로’라는 시한을 정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정공법으로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자주외교를 외치지만 실제 미국을 의식한다.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전에 남북대화를 시작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면서 “김 대통령의 촉구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외신기자들과의 다과회에서 이를 촉구한 것은 대북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전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남북관계가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부각될수록 남북관계 개선의 여건이 유리하게 조성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대북정책 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미국 정부에게 사인을 보내는 측면도 있다.
미 정부가 북미관계에만 시각을 고정하지 말고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도 담겨있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 외교부는 미 정부에 ‘북한에 대해 초장부터 너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있다”면서 “김 대통령의 언급이 26일부터 열리는 한ㆍ미ㆍ일 3자 대북정책조정그룹회의(TCOG)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포인트는 김 대통령의 언급이 북한의 화답을 전제로 한 사전 조율의 시나리오냐, 아니면 불투명한 상황 속에 던진 응수 타진이냐 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현재 막후 실무대화가 의미있게 진행되는 것은 없다”며 후자의 입장이다.
따라서 김 대통령의 언급은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는 답방을 촉구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를 우리 정책에 근접시키려는 우회적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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