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치하의 강제 노역 보상 문제를 놓고 3년 가까이 끌어온 피해자와 독일 기업의 줄다리기가 완전 해결 국면에 들어섰다.독일 기업들은 그 동안 걸림돌로 여겨온 개별 배상 소송들이 잇따라 각하됨에 따라 7월부터 모두 100억 마르크(5조 6,900억 원)에 이르는 보상금 지급을 시작할 전망이다.
종전 56년 만에 이루어지는 이번 보상은 민간 기업이 정권의 비호를 받아가며 전시에 저지른 반인권 행위에 대한 물질적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재계는 22일 볼프강 기보프스키 대변인 성명을 통해 “기금 출연에 참여한 업체들이 미국 법원의 개별 소송 각하 판결을 계기로 보상을 위한 충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는 최근 미국 뉴욕 법원이 독일 기업에 대한 개별 소송을 나치 치하 오스트리아 은행에 제기된 피해 배상 요구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각하 시킨다고 판결해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뉴욕 항소법원이 21일 이 판결에 대해 “재판권 남용”이라고 판시, 조건 없이 개별 소송을 각하함으로써 보상금 지급을 위한 걸림돌은 사실상 완전히 제거됐다.
현재 필라델피아와 샌프란시스코 법원에서 각각 강제노역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소송 각하의 대세를 거스르기는 힘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보상금 지급을 독일 의회가 승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곧 보상금 지급이 시작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보상과 관련된 강제노역 피해자는 유대인들과 러시아, 폴란드, 체코 등 동구권 지역 주민 등 모두 150만 명에 이른다. 기금 규모가 천문학적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워낙 많아 개인에게 돌아가는 보상금은 그리 많지 않다.
강제수용소 감금 상태에서 노역한 사람에게는 한 사람 당 7,000달러, 공장이나 농장에서 강압적으로 일한 사람에게는 2,200달러씩 지급될 전망이다.법적 판결이 배제된 상태에서 강제노역 피해 보상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상금 지급의 의미는 적지 않다.
기금에 참여하는 다임러 크라이슬러, BMW, 폴크스바겐, 도이체 방크, 알리안츠, 훽스트, 지멘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35개 기업들이 전시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사죄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日정부차원 보상 '0'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 연행됐던 한국인 등이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제기한 소송은 군대위안부 소송이나 BC급 전범 소송과 함께 이른바 '전후 보상소송'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이런 강제 연행ㆍ노동 소송은 강제 연행과 노예적 노동, 상습적 폭력에 따른 육체적ㆍ심리적 피해와 함께 임금 미지급까지 겹친 것이었으나 일본 정부가 국가 차원의 보상에 응한 예는 전무하다.
다만 민간기업이 화해에 응한 예가 드물게 있었으나 그것도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빠져 기업이미지 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인 강제연행에 대한 보상은 1997년 9월 신닛테쓰(新日鐵)가 징용됐던 한국인의 유족 11명에 대해 조위금 형식으로 2005만 엔을 지급한 '법정외 화해'가 처음이었다.
이어 99년 4월 니혼코칸(日本鋼管ㆍNKK)은 16세에 징용돼 상습적 폭행까지 겪은 김경석(金景錫)씨와 도쿄(東京)고법에서 화해, 410만엔의 해결금을 지급했다.
지난해 11월 가지마(鹿島)는 징용 중국인 986명중 418명이 숨지는 등 극악한 강제노동을 강요했던 행위에 대해 피해자측과 화해, 5억엔의 기금을 내놓아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호주 "2차대전 日억류 포로 보상"
호주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억류됐던 호주군 포로 또는 그 유족에게 1인당 1만 3,000달러(1,600만원)씩을 보상하기로 했다.
피터 코스텔로 재무장관은 23일 "2차대전때 일본군에 잡혀 싱가포르,
태국, 버마등 수용됐던 호주군과 그 유족 약 1만여명에게 모두 1억
2,900만달러(1,600억원)를 보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스텔로 장관은 "어떤 보상금으로도 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상처를 대신할 수는 없다"며 "독일등 유럽각지로 끌려갔던 포로들 보다 훨씬 가혹한 대우를 받았던 이들에게 우선 보상금으로 위로한다"고 말했다.
러스티 프리스트 호주재향군인회 회장은 환영의 뜻을 밝히고 "일본정부는 호주군 포로와 민간인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에 대해 사과해야한다"며 "정작 보상을 해야할 주체는 일본"이라고 주장했다. /캔버라 AP 연합=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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