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출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하기 위하여 동향인 장관을 바꾸었으나 결국 난데없는 '충성메모' 때문에 물러나고 말았다.군신관계와 같은 표현으로 가득한 메모를 본인이 작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경질로 이어진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별 권한도 없고, 임기도 짧은 장관자리에 적임자 한 명 임명하는 것도 어려운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직책을 맡게 되면 임명권자에게 이런 방식으로 충성을 다짐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한심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고 잘 나간다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수준이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이러한 내밀한 심정을 들킨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나 할까.
들킨 속내를 다시 감추기가 어려웠고, 반대자들은 스스로에게 위선적이지만 이를 비판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마음으로 지은 죄도 종교적 의미로는 죄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이를 알 수도 없거니와 탓할 수도 없다.
그러니 물러난 안동수 전 법무장관에게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눈치 없는 여직원의 경솔함이 참으로 원망스러우리라고 본다.
역대 대통령처럼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비판을 위한 정치공세도 있지만 호남편중인사라는 비판이 가장 많았다.
사실 정부요직이 호남출신으로 채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야당이 집권하던 시절 영남출신에 의한 인사 독식은 별로 시비의 대상조차도 되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퍼진 지역차별의식이 일종의 고정관념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역감정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인사편중이다. 그러나 정당이 지역적으로 분할된 현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인사편중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 역시 별로 없다.
이 땅의 지역감정은 비단 정치인들만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지역감정을 비판하는 체하는 국민 스스로가 지역감정의 볼모가 되어 이를 확산시키는 원인인자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호남 편중인사를 굳이 과거 영남정권에 의한 왜곡되고 편중된 인사를 바로잡는 일종의 성형수술로 보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사폐해가 심각한 것은 출신지역에 따른 인사편중이라고 하기보다는 능력과 정치적 이념성이 아니라 충성심이나 개인적 인연, 학연을 중시하는 인사이다.
충성심을 원하는 인사권자에게는 언제나 고분고분한 충성주의자들만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인재난에 부딪친다.
물론 개혁성향의 인물이라고 해서 모두 유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소에 능력 중심의 인사와 국정운영의 개혁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성향이나 살아온 과거가 개혁이나 능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물이나 전문지식도, 상황인식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임명하거나 구색 맞추기 인사가 결국은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현 정권의 권력기반이 허약한 탓에 한계성이나 불기피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성향 자체가 극복하여야 할 보수화로 바뀐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게 할 만큼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잘못된 인사로 인하여 대통령의 의식까지도 변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만일 인사청문회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치인에 의해 진행될 인사청문회가 정치공세로 일관할 경우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결국 대통령이 전권을 행사하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미래를 바라보는 역사인식과 인사원칙이 불가결의 핵심이다.
박상기·연세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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