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하루종일 법무부와 검찰청사는 침통한 기류가 가득했고 모두가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오후 2시의 안동수(安東洙) 법무부장관 퇴임식 30분전부터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 내정자와 김각영(金珏泳) 서울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가 굳은 표정으로 과천 법무부청사로 속속 집결했다.
오후 1시 52분께 검은색 다이너스티 관용차에서 안 장관이 내리자 김경한(金慶漢) 법무차관이 장관의 마지막 등청을 맞았다.
안 장관은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애써 웃음을 지으며 청사 계단을 걸어올랐다.
오후 2시 정각 217호 대회의실에서 퇴임식이 시작됐다. 안 장관은 도열한 대검과 서울 고ㆍ지검의 검사장들, 법무부 4급 이상 직원 등 60여명을 향해 "존경하고 사랑하는 법무ㆍ검찰 가족 여러분"으로 퇴임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안 장관은 곧 원고에서 눈을 뗀 뒤 즉석에서 불명예 경질에 대한 심경을 쏟아냈다.
안 장관은 부덕의 소치와 직원 관리 잘못을 거론한 뒤 "스무살 밖에 안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직원을 꼬여 컴퓨터에 입력된 문건을 입수해 공격자료로 삼았다"고 언론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다시 원고로 눈을 돌린 안 장관은 "취임식날 천명했던 인권국가 등의 이념을 실천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다"며 "자중자애하고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란 말로 퇴임사를 끝냈다.
오후 2시25분께 다시 관용차에 오른 안 장관은 배웅나온 직원과 기자들에게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란 말을 남긴채 역대 최단기 장관업무를 마감하고 청사를 떠났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께 장관의 사표수리 소식이 전해지자 법무부와 검찰에선 "결국"이라는 탄식 속에서도 "그나마 빨리 끝나 다행"이라는 안도의 소리가 함께 터져나왔다.
한 법무부 간부는 "국민의 정부 들어 한명 건너 한명씩 장관이 퇴진하는 불명예를 당했다"며 "법무부와 검찰로선 오늘이 제2의 법치(法恥)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은 대부분 장관의 조속한 사퇴로 법무부ㆍ검찰 조직이 안정될 기회를 얻었다고 위안하면서 후속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법무부는 부서별로 장관이 참석키로 한 중요 행사를 황급히 점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직원들은 당장 31일 세계 150국이 참가한 가운데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반부패국제포럼에서 한국 법무장관이 맡은 대표연설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했다.
장관을 대신해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법 서명식에 참석했던 김경한 법무차관은 청사로 복귀하자마자 법무부 실ㆍ국장 전원에게 예정에 없던 오찬 자리를 마련, 일치단합과 업무전념을 당부했다.
그러나 오찬장은 그저 고요함 속에 수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손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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