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시절 러시아 발레는 고전발레 아니면 사회주의 이념을 따르는 것이었다. 거기서 벗어나면 당국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보리스 에이프만이 자신의 발레단을 만들어 현대발레를 시작한 것은 모험이었다.1977년, 페레스트로이카로 구소련의 문이 열리고 소비에트 예술에 숨통이 트이기 10여 년 전의 일이다.
고전발레의 테크닉에 현대무용의 표현력을 결합한 그의 작업은 러시아 발레의 새로운 모색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로 문학작품이나 철학적 주제를 분명한 줄거리와 극적인 표현력으로 다루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왔다.
에이프만은 오늘날 가장 성공한 러시아 안무가이자 현대발레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이 온다. 27일부터 6월 2일까지 대표작 '차이코프스키-미스터리한 삶과 죽음' '붉은 지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공연한다.
이 단체의 내한은 94, 95년에 이어 세번째이지만 대표작 세 편을 다 갖고 오기는 처음이어서 기대가 크다.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원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장대한 스케일과 심오한 철학의 2시간짜리 대작이다.
'붉은 지젤'은 20세기 초반 활약했던 러시아의 전설적 발레리나 올가 스페시브체바(1895~1991)의 비극적 삶에 대한 추억이다.
볼셰비키 혁명의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 서방으로 망명한 그는 상실감과 고독감에 시달리며 20년간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죽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사회적 금기인 동성애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렸던 이 위대한 음악가의 고통스럽게 분열된 내면을 그리고 있다. 94년 내한 때 갖고 온 작품을 수정ㆍ보완했다.
러시아의 위대한 예술가와 작품에 바치는 경배처럼 보이는 이들 세 편은 치밀한 심리묘사와 극적 긴장감으로 장엄한 철학적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에이프만은 역사와 개인(붉은 지젤), 도덕과 욕망(차이코프스키), 인간과 구원(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문제를 탐구한다.
문학성과 철학성이 짙게 묻어나는, 선 굵고 강한 표현력으로 파고 드는 작품들이다.
▦차이코프스키 27일 오후 6시, 28일 오후 8시 ▦붉은 지젤 29~31일 오후 8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6월 1일 오후 8시, 6월 2일 오후 3시 30분ㆍ7시 30분. 인터넷 예매 www.lgart.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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