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은 경기(景氣)변화에 따른 탄력성이 고무공 만큼이나 예민하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 금세 부도업체가 속출하는 등 중병에 빠져 들고, 경기가 살아날 때는 가장 먼저 흥청거린다.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7% 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밀접한 인과관계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건설경기는 흔히 경기변동의 높낮이와 속도를 조절하는 경제정책의 지렛대로 애용된다.
정부가 그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정부와 여당은 주택건설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고급주택을 제외한 모든 신축주택의 양도소득세를 내년 말까지 면제하고 취득세, 등록세의 감면범위를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 주택건설 분야에 우선 바람에 불어넣어 전체 내수경기가 살아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인위적인 경기부양이 얼마나 부작용이 심각한 지를 우리는 이미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단기적인 반짝경기 효과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후유증이 더 심각하다는 사실은 6공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에 따른 신도시 파동이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흥미 있는 자료 하나를 냈다. 지난 1982년부터 최근까지 건설투자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6개월간은 성장률이 크게 높아지지만 이후에는 떨어져 18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오히려 성장률 감소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건설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은 일시적인 거품이자 최면(催眠)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98년 5월 지금 조치와 거의 흡사한 건설경기 부양대책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거기에 힘입은 것인지 경기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IMF 체제를 극복했다는 경솔한 자화자찬이 관가주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상반기부터 다시 경기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으니 한은 분석은 거의 정확한 셈이다.
이러한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제 관료들이 다시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헌 카드에 매달리는 것은 "당장 먹기에는 역시 곶감이 달기 때문이다"흡연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외칠 때는 선거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신호라는 사실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한은의 분석이 맞다면 본격적인 건설경기 부양효과는 내년에 본격화해 대선이 있는 내년 말까지 이어지게 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절묘한 타이밍이다.
인위적 경기부양이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온 국민이 외환위기의 고통을 감내해가며 어렵게 일궈낸 구조조정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체질과 내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어떤 처방도 백약이 무효일 뿐이다.
배정근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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