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승낙 없이 식을 올리게 되어 아직까지 제대로 인사조차 드리지 못한 상태여서 이렇게 지면을 빌려 저희의 결혼생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두 분 건강은 어떠신지요? 건강에 도움은 드리지 못한채 심려만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사실 한국의 어느 부모가 장애인과 결혼하려는 자식을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3분의 2가 초등학교졸 이하의 학력이고, 3분의 2가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한국사회의 장애인.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엄존하는 현실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편견을 고려한다면 지금 당장 이 사회에서 저희 자식이 동일한 결정을 한다고 할 때 저희도 동의하기 어려울 겁니다.
자식의 장래와 행복을 걱정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반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부모님의 반대에 대해 어떤 서운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는 시간을 두고 보다 철저히 싸워 이 사회를 바꾸고 저희의 행복한 삶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결혼 후 저희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정은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많은 세간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여 잘 정돈해 놓으니 깨끗하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똑같은 집인데도 혼자 지내던 예전과는 달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정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내 일 네 일이 없습니다. 저희 가정을 위해서 필요하면 그것이 우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같이 쉽니다.
가정을 꾸리고 나니 임신과 출산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백일 정도 있으면 만나게 될 애가 배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한 아기의 부모가 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서인지 저희는 요즘 들어 부쩍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경험하게 될 모성이라는 측면에서의 동질감이 아내와 장모님을 보다 단단한 끈으로 연결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며칠 전 저희는 몸이 점점 무거워져 이후에는 돌아다니기가 불편할까 염려되어 출산용품을 서둘러 준비하였습니다. 사야 할 용품목록을 만들고, 적당한 가게를 찾아 여기저기 들르고 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가더군요. 요즘엔 부모 되기가 옛날보다 어려워진 것 같다고들 하는데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는 단란한 우리 가정의 행복을 부모님께 전달할 메신저가 될 것이고 다른 한 편에서는 저희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시키는 메신저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저희 애의 어깨가 너무 무겁죠?
아무쪼록 어머님, 아버님 늘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저희와 함께 해 주십시오.
막내딸과 사위가 아버님 어머님께.
崔 民 사회복지법인 '장애인의 꿈 너머'대표
金貞愛 사회복지사
▲ 1급 지체장애인인 최 민씨는 16세 아래인 김정애 씨와 올해 4월22일 장인 장모의 허락을 얻지 못한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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