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아마겟돈'의 속편 같은 영화였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촬영에 협조한 미군에서 영화에 대해 만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것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절친한 친구인 멧 데이먼과 더불어 할리우드의 지성파 배우로 불리는 밴 에플렉(29)이 이번에는 전쟁영웅 '레이프'로 돌아왔다.
비행기 타는 것도 싫어해 '비행 공포증'환자로 불리는 그는 "대본을 보고 울었다"는 여자친구 기네스 펠트로, 친구 멧 데이먼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전투기 조종사역으로 멋지게 변신했다.
애절한 멜로와 초호화 액션이 만난 '진주만'(감독 마이클 베이)의 주인공으로 벤 애플렉이 낙점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가 대니 역, 레이프는 할리우드의 신예 조시 하트넷이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캐스팅 마지막 단계에서 뒤바뀌었다.
8세 때 드라마 '미미호의 항해'에서 만난 멧 데이먼과 함께 '굿 윌 헌팅'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사까지 차린 이 지성파 배우를 '미군 영웅'으로 만들어 보자는 데 제작자 데리 브룩하이머와 감독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60년전 군인 역할을 위해서는 요즘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 되었다. 당시의 라이프 지를 읽고 기록 뉴스를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는 그는 일주일간 육군 레인저(게릴라전 훈련부대)캠프에서 훈련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액션과 멜로의 비중이 엇비슷한데 어떤 장르를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액션은 촬영중 힘들고 지루하지만 편집되어 나온 것을 보면 근사하다.
반면 멜로는 촬영중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진짜 좋은 영화는 멜로와 액션이 잘 만든 퀼트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1억 4,500만달러짜리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2차대전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던 미국이 '진주만'을 통해 전쟁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스타가 된다는 것에 그는 태연해 보였다. "마이클 잭슨처럼 차를 수십 대씩 끌고 다니며 시선을 끄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철저히 대중으로부터 격리되는 편을 즐긴다. 가끔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을 보지만 무시한다."
"배우인 남동생 캐시와 멧 데이먼이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그 작품에 출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그의 또 다른 꿈은 영화 감독.
"감독이 되더라도 직접 각본을 쓰고 저예산으로 제작하겠다"는 그는 여전히 인디(독립)영화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역사의 진실보다 볼거리에 집중효과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의 나른함을 틈탄 일본의 기습공격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인에게 '비극'이 아니다.
21일 오후 미국 최대의 항공 모함 '존 C. 스테니스'호에서 열린 영화 '진주만'(Pearl Harbor)의 초대형 시사회는 개막식부터 미국이 과거를 얼마나 잘 포장해 상업화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에서 25일 개봉(국내는 1일)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벌어진 전세계 기자시사회 및 개봉 이벤트에는 유명 가수와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그들은 '비극'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극에 어떻게 맞섰는가'를 일종의 축제처럼 드러내고 있다.
영화 '진주만'은 어릴 적 장난감처럼 비행기를 가지고 놀던 두 소년 레이프(벤 애플렉)와 대니(조쉬 하트넷)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육군 항공대에 나란히 입대하지만 진정한 군인의 길을 걷고 싶었던 레이프가 독일군의 우세를 접하고 영국군 파병에 지원하면서 엇갈린 운명을 걷기 시작한다.
시력이 나쁜 것을 눈감아 준 간호장교 에블린(케이트 베킨세일)과 사랑에 빠진 레이프 대신 그녀와 첫 밤을 보낸 것은 형제와 다름없는 친구 대니(조쉬 하트넷)였다.
"운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영웅의 죽음, 그리고 귀환, 엇갈린 사랑과 우정 등 영화는 '영웅'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전장에 나선 보통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더 록' '아마게돈'의 흥행감독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은 같은 소재의 '도라 도라 도라'(1970년)가 보여주지 못한 화려한 볼거리로 중무장했다.
신사참배하듯 전략회의를 하는 일본군, 마치 관객이 전투기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따라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전하는 독특한 시점의 샷, 우주영화에서 광선이 나오듯 포탄의 발사 흔적이 드러나는 가상현실 게임 같은 오락적인 공중 전투신 등 볼거리가 압권이다.
여기에 저공 비행하는 일본전투기가 흐뜨려 놓은 빨랫줄은 영화가 스펙터클과 서정을 영화에 접근함을 말한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떠올리게 하는 침몰 전함의 병사들과 그들 발 밑을 상어처럼 지나가는 어뢰 등 볼거리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구식의 로맨스와 멜로가 뒤섞인데다, 스토리가 단선적이어서 때때로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 그러나 관객들은 '역사의 진실' 보다는 새로운 화면과 영웅의 탄생 등 '즐거운 놀라움'을 선호한다는 점을 이 영화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할리우드 한인배우 일본계 미군으로 출연
25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진주만'은 배급사인 브에나 비스타가 500만 달러의 사전 마케팅 비용을 들여 사전홍보를 하고 있는 여름 블록버스터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다룬 이 영화에 한국인 배우가 출연했다.
주인공은 미 조지아주 출신으로 UCLA를 졸업한 강성호(29ㆍ사진)씨. 지난해 미국 CBS가 방영한 인기드라마 '병법(Martial Law)'에서 홍금보의 아들로 출연한 그는 180㎝가 넘는 큰 키에 무술솜씨로 시선을 끌었다. 그는 또 워너브라더스가 운영하는 케이블방송으 인기 청춘 시트콤에도 고정 출연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일본군의 암호문을 해독하는 일본계 미군이다. 진주만 공습 이후의 인종갈등을 그린 '삼나무에 내리는 눈'에서 릭 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일본인으로 나온다.
배역의 비중은 크지 않은 편이어서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는 역이다.
할리우드에서 우리 배우들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이자 세계 역사 속의 한국의 처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이 제멋대로 교과서를 왜곡하는 것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일본인 대역으로 설 뿐이다.
'진주만'의 벤 에프렉,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속으로 들어왔다.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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