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모 중학 1년생 딸을 둔 김모(39.여)씨는 최근 학교로부터 ‘학교발전기금 모금안내장’이란 걸 받았다.안내장에는 ‘모든 학부모들의 참여를 바란다’는 문구와 함께 목표액이 명기돼 있고, 입금시 어느 학생의 부모인지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돼 있었다. 김씨는 “아이에게 혹여 불이익이라도 갈까봐 어떻게든 돈을 낼 수 밖에 없다”며 “이게 강제적인 잡부금이 아니면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도입 4년째를 맞는 학교발전기금 제도가 갈수록 파행운영되면서 초려芟고교 학부모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다.
처음부터 우려됐던 반 강제적 모금액 할당, 자의적인 기금 집행 등이 학교마다 거의 일반화하면서 당초 취지였던 자발성과 투명성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 게다가 교육여건의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뜻밖의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어 이 제도의 전면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C초등교는 학생 일인당 5만원씩 일괄 할당, 총 3,500여만원을 모금했다가 교육청으로부터 전액 반환지시를 받았는가 하면, G고교도 임원 학부모들로부터 최고 20만원씩 거뒀다가 물의를 빚었다.
올 들어서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에서 교육부에 감사를 요청한 이런 식의 부당모금사례가 벌써 51건에 이른다.
특히 지역ㆍ학교별 모금액 차이는 교육의 질과 환경 편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관할 학교별 모금실적이 최고 5억1,000여만원까지 차이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
경남대 교육학과 김성열 교수는 “교육재정이 빈약해 일선학교들이 재원의 상당부분을 발전기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정도의 모금액 차이는 심각한 교육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당장 이 격차를 줄이는 방안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금이 원래 취지대로 쓰여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대유(39) 정책연구국장은 “학교발전기금 대부분이 컴퓨터, 에어컨 구입이나 시설 보수 등 학교 기본경비나 설비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교육의 질적 향상을 기한다는 근본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변질된 취지를 되살리고 운영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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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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