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공공소유의 전통이 약한 미국에서는 규제완화나 행정서비스의 민간위탁까지도 광의의 민영화에 포함시켜왔다.그 결과 작년 여름과 올 겨울에 이어 최근 또다시 일부 지역의 단전사태를 몰고온 '캘리포니아 전력대란'의 처방을 둘러싸고 공방이 뜨겁다. 부시정부는 17일 원자력개발과 석유채굴 장려 등 나름대로 강력한 에너지정책을 제시하였다.
지난 2월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송전선 매입 등 주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규제를 통해 전력수급 불균형에 맞서기로 하였는데 그는 이번 부시대통령의 발표에 대해 전력난 극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논평하였다.
캘리포니아사태에 대해 일부에서는 수급불균형의 문제이지 규제완화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공익기간산업에서의 규제완화가 가격담합을 부추겨 수급불규형이 나타났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이번 부시대통령의 조치는 오히려 자신에게 선거자금을 몰아준 석유산업 등 에너지업계의 이익만 반영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3월 중순 주택공사 사장 등 공기업 경영진 7명이 경영실적 부진을 이유로 임기를 남겨둔 채 중도 해임되었다.
대부분이 전문경영인으로 분류되던 터여서 말이 무성하였는데 이 달 초 정부는 주택공사 사장에 자민련 부총재 출신 인사를 기용하였다.
주택공사 사장추천위원회는 주택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사 중 공공성과 기업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인물을 후보자 요건으로 내세웠던 바 있는데 과연 이 인사가 그러한 조건에 적합한 것이냐고 일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사실 공기업비효율이며 낙하산인사며 다분히 상투적인 공방의 측면이 없지는 않다.
정부의 독점적 보호 덕분이라는 반론이 없지 않지만, 재경부나 감사원의 정부투자기관 결산보고를 한국은행이 집계한 민간부문 기업경영분석과 비교해 보면, 공기업의 수익성이 오히려 민간 제조업 평균 및 대기업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그동안 정치권의 개입과 주무부서의 지시 속에 전문경영인 육성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만무하니 우선은 정치력과 조직감각을 갖춘 외부 인사가 영입될 수 밖에 없다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또 야당의 그렇고 그런 정치공세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는 지적을 십분 감안한다 하더라도, 3년여 동안 19% 안팎의 인원을 감축한 공공부문이고 보면 도대체 이게 개혁이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공기업 인사의 민원창구가 동교동계의 권모 실세로부터 청와대 비서실 쪽으로 바뀌었다는 둥 총선 낙천자를 공기업 인원으로 배려하는 여권 내부의 '교통정리' 운운 하는 정치면 기사가 버젓이 실리는 현실은 민망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기업개혁의 또 한 축인 민영화에 대해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오랜 경영간섭의 고리를 끊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른바 '주인찾아주기식 민영화'나 외국인 매각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비아냥한다.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예컨대 1999년 2월 대폭 개정된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은 공기업 사장의 추천과 경영계약 등 비상임 사외이사의 역할을 강화하고 전문책임경영을 시도하는 등 일단 법리상으로는 상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특히 공익기간산업의 공기업개혁을 둘러싸고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조차 '법 제정을 통한 경영개선의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굳이 정부지분 매각을 통한 민영화를 시도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되어 왔다.
미국과 우리는 사정이 많이 다르지만 수익성 못지않게 공공성을 도모하는 공기업의 경우 민영화보다는 낙하산인사를 감시할 노동조합의 역할, 책임있는 사회단체의 참여 등 기업 지배구조를 바꿔가는 정치개혁, 사회개혁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윤자·한신대 국제경제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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