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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퓨전 혹은 크로스오버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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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퓨전 혹은 크로스오버와 정치

입력
2001.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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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는 14세기 초 마르코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가져간 국수와 신대륙 발견 후 남미에서 건너온 토마토를 이탈리아 조리법으로 결합한 음식이다. 그래서 스파게티는 요즘 유행하는 퓨전푸드의 원조로 꼽힌다.요즘 문화 영역에서는 퓨전 또는 크로스오버로 표현되는 이질적인 것의 혼합, 또는 경계 넘나들기 바람이 불고 있다.

음악에서 크로스오버는 재즈와 록의 결합을 의미했으나 클래식과 대중음악 혹은 국악과 서양악기의 만남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요즘 식당가의 주방에서는 동ㆍ서양의 음식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세계의 자동차 시장에서는 승용차와 미니밴ㆍRV(레저용 차량) 등의 장점들을 결합한 COV(crossover vehicle) 열풍이 불고 있다.

현대 자동차가 최근 출시한 라비타도 COV의 일종이다. 퓨전과 크로스오버는 현대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코드가 되고 있다.

퓨전과 크로스오버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기도 하지만 둘의 개념은 다르다. 즉 퓨전은 이질적 요소가 하나로 융합,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이고 크로스오버는 다른 장르가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파게티는 퓨전이지만 스테이크를 된장국이나 김치 등과 곁들여 차린다면 크로스오버인 셈이다.

이질적 집단의 정체성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는 요즘의 우리 정치를 퓨전과 크로스오버 개념으로 분석해보면 어떨까.

지난 97년 대선에서 개혁과 진보의 정체성을 DJ와 보수 이미지의 JP가 손을 잡아 정권을 창출한 것은 크로스오버라고 할 만하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합당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퓨전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이념을 토대로 한 정체성들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것은 정치ㆍ사회적으로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꼭 바람직한 것만도 아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창조적으로 크로스오버해 정치 생산성을 높이는 정치력이야말로 요즘 우리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이 아닐까.

현재 그 같은 크로스오버 정치 리더십을 시험 받고 있는 사람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다.

한나라당 안에는 맨 오른쪽에서 맨 왼쪽에 이르까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사들이 반 DJ라는 네가티브 정서의 울타리 안에 동거하고 있다.

이 총재는 최근 개혁적 보수라는 기치로 이 이질적 정체성들을 엮으려 하고 하고 있으나 오른쪽에 서 있는 김용갑 의원이 '개혁적' 이라는 수식어를 치받고 나서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다.

민주당의 김근태 최고위원도 크로스오버 정치를 실험 중이다. 매우 진보적인 성향의 그는 최근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JP와 허주(김윤환 민국당 대표)를 잇따라 만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재야 출신인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 등의 "개혁 정통세력의 정치구심점 형성이 먼저"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자칫하면 정치의 크로스 오버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정략에 빠지는 야합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색깔, 단일 정체성으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풀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이질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엮어내는 크로스오버 정치 리더십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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