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정직하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한창훈(38)은 일찍이 뱃사람으로 시작해 트럭 운전사, 막노동꾼, 다방 DJ까지 '먹고 살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다. 그의 치열한 삶의 이력은 작품에서 걸쭉하고 능청스런 입담으로 투영됐다.그의 세번째 소설집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문학동네 발행)이 출간됐다. 뱃사람답게 짠내 나는 바다를 문학적 공간으로 유지하되, 상처를 안은 서민의 삶을 한층 깊이 있게 묘사했다. 그의 특기였던 풍성한 방언의 수위를 낮추는 대신, 인간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는 의욕이 엿보인다.
'춘희'에서 인생은 '비누와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이 비누랑 똑같어. 한 스물댓까지는 엄청 마딘디 그 이후로는 쏜살같어." 삶을 비누에 빗대는 은유에서 작가의 그간 성찰이 비쳐진다. 마을 사람들이 차려준 백살 잔칫상을 받아놓고 연춘 노인은 급사한다.
잔칫집이 초상집으로 뒤바뀐 기막힌 자리에서 춘희는 어머니의 죽음을 회상한다. 삶과 죽음이 구별되는 자리는 '몸'에 대한 인식이다.
미라 같은 백살 노인을 보면서 춘희가 떠올리는 것은 "단단하고 살집 좋은 자신의 몸"이다. 삶은 '그런 것'이라는 허무를 드러낸 것일까. 작가는 '하늘의 어머니가 내려다 보는 것 같다'고 끝맺었다.
그 어머니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다 이 몸 속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삶과 죽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질서의 세계를 통찰했다.
'그대 저문 바닷가에서 우는'에서는 한씨의 서민적 입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속도감 있는 상황 전개와 비어ㆍ속어의 활달한 구사는 반갑고 친숙하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에서 한씨는 심연으로 들어가 인간의 내면을 응시한다. 아내의 죽음으로 절망한 남자는 '세상의 끝'인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마음 속 비탄과 고통을 마주한다.
문학평론가 김만수씨는 "거침없는 입담과 남성의 전투적인 삶을 그리는 듯 싶지만, 실은 '여성성'이 남성들의 이념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다의 위력은 여성의 생명력과 다르지 않고, 한창훈 소설 속 남성들은 여성을 향해 줄기찬 제망매가(祭亡妹歌)를 부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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