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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내사랑 자오즈민, 아들 병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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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내사랑 자오즈민, 아들 병훈이

입력
2001.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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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전부인 당신과 아들 병훈에게.온 국민의 축하를 받으며 우리가 결혼을 한 지도 벌써 열두해가 되었네요. 병훈이가 어느덧 4학년이 되었으니 참 세월이 빨라요.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나 병훈의 키가 나날이 커가고 당신이 한국생활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월의 나이테를 확인하고 있답니다.

여보! 오랜만에 당신에게 글을 띄웁니다. 한국과 중국의 편지교류도 자유롭지 못하던 연애시절. 우리 사이에 놓여 있던 만리장성에 암담해 하면서도 '당신과 닿을 수만 있다면, 좀 더 다가갈 수만 있다면'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편지를 썼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더듬더듬 중국어로 한 마디를 건네자 당신이 환한 미소로 답해 주었을 때 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는데.

그토록 설레이며 당신을 그리던 마음이 어느덧 세월에 묻혀 요즘은 조그만 선물조차 건네지 않는 무뚝뚝한 한국남자가 다 된 것 같군요.

먼 땅으로 시집와 생소한 문화와 부딪치며 생활한다는 게 정말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도움을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뿐이오. 신랑에게 차려준다며 어설프게 맛을 낸 당신의 김치찌개가 생각납니다.

이제는 한국의 맛을 버무리는 당신의 손을 한 번도 다정히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체전에서 중국과 우리가 붙었을 때 "나한테는 남편 잘 되는 게 첫째"라며 한국을 열심히 응원해 주던 당신. 당신의 격려, 당신의 걱정.

그것 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답니다.

최근까지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많은 국민이 당신을 오해했는데 난 따뜻한 위로의 말 조차 해주지 못했던 것 같네요.

그러나 당신이 마음고생을 했던 만큼 내 마음도 너무 아팠다는 점을 알아주오. '당신을 중국의 탁구정보를 빼내는 사람'으로 보도한 중국언론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졌던 당신. 항상 우리나라와 중국에 도움이 되는 일만 하려고 한 당신에게는 가혹한 기억이었을 겁니다.

이제 그 아픈 상처를 모두 지워버려요. 진실은 어떤 오해보다 강한 거니까요. 무엇보다 나와 우리 아들 병훈이가 당신을 의지하며 곁을 지키고 있잖아요.

이제 공부하랴 운동하랴 어깨가 항상 무거워 보이는 우리 아들 병훈이를 불러본다.

병훈아! 골프는 특히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종목이다. 마음 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신경질을 부리고 화를 낸다고 어려움이 해결되는 게 아니란다.

아빠가 늘 얘기했지 않니. 잘 하려는 욕심은 좋지만 연습이 우선이란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땀을 흘린 덕에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골인지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토너 같이 출발선에 선 너를 보면서 엄마와 아빤 사실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미국 프로골프(PGA) 무대에 꼭 서고 싶다'는 너의 말.

누구보다 운동선수의 삶을 잘 알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을 거다.

병훈아 그리고 여보! 문득 편지로 글을 띄워보니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되네요.

운동하며 흘렸던 땀을 이제는 우리 가족을 위해 흘리고 싶소. 지금처럼 늘 서로에게 힘을 주고 믿음이 되는 가족. 내가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여보, 장모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걱정이 많지요.

조만간 가족 모두 장모님께 한번 다녀옵시다.

안재형 국가대표 탁구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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