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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양선희의 시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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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양선희의 시 '신비하다'

입력
2001.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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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씨의 근간 시집 '그 인연에 울다'(문학동네 펴냄)에는 '신비하다'라는 시가 실려 있다. 시인은 과일 가게에서 복숭아를 산다.복숭아를 봉지에 담은 가게 아주머니가 시인에게 말한다. "이거 한쪽만 상한 건데/ 도려내고 드실래요?"상한 복숭아 몇 개를 덤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인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복숭아들을 맛본다.

"먹다 보니 하, 신기하다." 무엇이 신기한가? "성한 복숭아보다/ 상한 복숭아 맛이 더 좋고/ 덜 상한 복숭아보다/ 더 상한 복숭아한테서/ 더 진한 몸내가 나"는 것이 신기하다.

그 일상적 경험의 신기함에서 시인은 어떤 신비함을 맛본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육신이 썩어 넋이 풀리는 날/ 나도 네게 향기로 확, 가고 싶다."

시인은 복숭아의 살에서 자신의 살을 연상한다. 그럴 만도 하다. 복숭아 빛깔이 살빛에 가까워서만은 아니다.('살색'이라는 우리말에 의도되지 않은 인종주의적 함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살색'이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그른 '말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한국어를 배우는 흑인이 '살색'이라는 말을 익힐 때, 그는 묘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과피의 솜털도 살을 닮았고, 과육의 감촉도 그렇다.

무르익은 수밀도를 한 입 베어 물 때의 육감적 기억을 되살려보라. 복숭아가 흔히 볼이나 가슴이나 엉덩이에 비유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인은 성한 복숭아도 맛보고, 상한 복숭아도 맛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한 복숭아보다 상한 복숭아 맛이 더 좋고, 덜 상한 복숭아보다 더 상한 복숭아에서 더 진한 몸내가 난다.

시인은 상한 과육에서 썩은 육신을 상상한다. 육신의 썩음은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은 흔히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그러나 성한 복숭아보다 더 맛있는 상한 복숭아를 썩은 육신과 짝지음으로써 시인은 죽음의 공포와 혐오에서 벗어난다.

상한 복숭아 맛이 더 좋고 더 진한 몸내를 내듯, 썩은 육신이 향기를 뿜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한 복숭아가-특히 한쪽만 상한 복숭아라면-꼭 썩은 육신에 비유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상처난 몸, 온전치 못한 몸에 비유될 만하다.

그래서 상한 복숭아가 더 맛있고 더 진한 몸내를 낸다면, 상처 난 육신이나 불구의 육신은 더 짙은 영혼의 향기를 뿜어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상한 복숭아는 상처 난 영혼에도 비유될 만하다.

그 상처 난 영혼은 아무런 시련 없이 무구하기만 한 영혼보다 더 넉넉하고 더 강할 수 있다. 그것이 원숙의 힘이다.

그래서 기자는 시인의 노래를 이렇게 고쳐 읽는다. 성한 삶보다 상한 삶의 맛이 더 좋고, 덜 상한 삶보다 더 상한 삶에서 더 짙은 향훈이 난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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