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수산(55)씨의 글을 읽다 보면 언제나 '사막' 이 떠오른다.그가 리비아사막을 횡단하며 만났던 모래바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은 아니다. 자신의 청춘을 사르던 춘천 호반이나 경춘가도를 이야기할 때도, 제주 바다와 한라산 제2횡단도로를 말할 때도 어김없이 사막이 연상되는 것이다.
왜일까. 우리 문학에서 빛나는 유려하고 감성적인 문체를 개척한 그의 글에서 늘 사막의 모래 같은 서걱거림이 느껴지는 것은 왠가.
그것은 한씨가 사막처럼 막막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정하고 반짝이는 소설문장을 구사하는 그가 금세기 최고의 첼리스트로 꼽는 자크린느 뒤 프레의 첼로 선율처럼 고요하고도 독자를 흔드는 경어체의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삶의 황량함이자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지혜의 길이다.
그가 동시에 출간한 두 권의 에세이집 '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해냄 발행)과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이레 발행)에 실린 글들은 바로 삶이라는 사막, 그것을 건너기 위해 '참혹하게 자신과 맞서라'는 권유이다.
언제나 풋풋한 이미지의 작가이면서도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버린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젖은 짐 보따리를 든 나그네'처럼 언제나 길 떠나는 자의 모습으로 젊은 가슴들을 움직인다. "아들아, 언제나 아침을 사는 사람이 되어다오."
'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에서 한씨는 자신이 걸어온 세 가지 길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현실의 길이면서 자신의 생을 곡절시켰던 스산한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사랑과 문학의 열정을 묻었던 경춘가도, 밤이면 창마다 불밝힌 밤기차가 '신의 허리띠' 같이 어둠의 바다를 가로질러가던 길이다. 그리고 한라산의 제2 횡단도로.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의 후유증으로 3년간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세살바기 딸아이와 함께 오르던 도로였다. '허무의 자궁'을 보던 길이다.
이제 그는 세번째 길 위에 서 있다. 서울과 양평을 잇는 6번 국도이다. 한씨는 최근 양평에 '물을 맞이하는 집'이라는 뜻의 '영하당(迎河堂)'이라는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곳을 오가는 길을 그는 이제 '마감'을 향해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안개 속에 서면 모두 혼자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이제 이 강물과 안개의 길에서 젖은 나그네처럼 혼자만의 길을 떠나고 있다. 최근 세종대 교수직도 일 년을 쉬면서 그는 오랜만에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한씨는 한 에세이에서 "내가 쓰는 글이 정말로 아침마다 내가 이를 닦는 칫솔만한 사회성이나 유용함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고 겸양한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남미 작가 마르케스의 일화는 의미심장하다. 직장을 그만둔 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완성하고 출판사로 원고를 부치러 우체국으로 갔던 그는 우편요금이 모자라자 원고를 무 자르듯 반으로 뚝 잘라 앞 부분만 보낸다.
나머지 원고 반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헤어드라이어 기를 판 돈으로 보냈다. 마르케스의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20세기 최대의 명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래서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한씨는 말한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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