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은(68) 시인의 '미당 담론'('창작과 비평' 여름호)으로 문단이 요란하다. 미당 서정주의 훼절(毁折)에 대한 논란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유난히 둘 사이의 피가 진했던" 스승을 정면으로 공격한 고씨에 대해 지지와 반발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씨는 미당의 친일 행각과 신군부 찬양을 직접 시와 결부시킴으로써, 미당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미당의 과거 행적이 작품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그의 타계 전부터 시도됐다.
지난해 말 나온 계간 '포에지'에서 문학평론가 황현산 구모룡씨도 미당의 행적을 시 세계에 대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두 사람의 비평은 고씨보다 몇 달 앞선 것이고, 미당 생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2000년 11월) 돌아볼 만하다.
황씨는 미당이 '가미가제 특공대'를 찬양한 것이나 80년 신군부 지지연설을 한 것이 "특별한 신념 없이 한 일"이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별 생각 없는 듯한 태도는 거꾸로 "자신이 그런 일을 해도 허용된다는 사상"이다.
미당의 정치적인 '허용사상'은 그의 시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미당이 사용한 시어를 분석, 미당의 정치사상이 시 세계를 지배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미당 시의 특징인 전라도 방언은 "사람살이는 늘 그런 것"이라는 토착 정서와 맞닿아 있다. 방언이 전달하는 가족 같은 친근성은 논리와 시비를 뛰어넘는 관용을 확보한다.
결국 미당의 눅진한 시어는 그의 정치적 이력과 맞물렸다는 설명이다.
구모룡씨는 시의 미학과 시인의 사회적 행위를 떼어내는 분리주의에 반대한다. 구씨는 '자화상'의 시구 '애비는 종이었다'와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에서 시대와 현실을 회피하는 '무책임의 사상'을 발견한다.
똑같은 시구를 두고 고은씨가 "마름 아들의 노예근성"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로 비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구씨는 미당의 개인적인 선택과 사회적 행위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시의 미학에 드러나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에 대해 무심한 시선을 유지하는 미당의 '초월 미학'이 친일이나 신군부 찬양 같은 행위의 책임을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황현산 구모룡씨는 모두 '행적을 문제삼아 미당의 시까지 폄하한다'는 볼멘소리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고은씨의 미당 비판에 반발하는 문인은 "행적이 작품을 평가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고씨 자신이 한 때 '시의 정부(政府)'라고 추켜세웠듯 한국 현대시는 미당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지난해 "미당의 과거가 우리 민족사에 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당의 시가 그런 이유로 매도당하는 것은 엄청난 민족문화의 손실"이라고 미당을 옹호한 바 있다.
미당의 시와 삶을 연관시켜 재평가하려는 작업은 꾸준하게 이어질 분위기다. 김지하 시인도 최근 미당 시에 관해 "아름답지만 소름끼치는 감동은 없다"면서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기 때문에 미학적 관점에서도 감동이 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계간 '실천문학' 여름호).
'미당 담론'이 일시적 '문단 사건'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미당을 둘러싼 양측 모두 보다 정치(精緻)한 논리를 전개할 때가 되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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