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최고경영자)를 보면 회사의 미래가 보여요."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보다 CEO에 따라 회사가치가 결정되는 시대다. 특히 시장경제가 발달된 나라일수록, 경쟁이 치열한 업종일수록 CEO와 주가의 상관관계는 높다. 이른바 'CEO 주가'이자 'CEO 효과'다.1999년 휴렛 패커드가 칼리 피오리나를 CEO로 영입한다고 발표하자마자 주가는 단숨에 2%가 올랐다. 지난해 12월 GE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짐 맥너니가 3M의 CEO로 부임한다고 발표되자 3M의 주가는 이틀만에 11%나 상승했다.
미국의 주식시장이 이처럼 CEO에 민감한 것은 최고경영자 한 사람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GE의 잭 웰치, IBM의 루 거스너,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과 같은 CEO들은 빼어난 경영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주가도 수십배씩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능력을 검증받은 CEO들의 연봉도 거의 천문학적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 CEO-생산직 연봉 격차 8배
국내에도 CEO에 따라 주가가 폭등하고 기업 매출이 급증하는 등 바야흐로 'CEO시대'가 도래, 100만달러(약 13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밑천도 없이 '경영 능력' 하나로 재벌 총수 못지 않은 대우를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한미은행 CEO로 영입된 하영구(河永求ㆍ전 씨티은행 소비자금융부문 대표)행장의 연봉은 약 100만달러로 알려졌다. 또 163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아 앞으로 이 은행의 주가가 1만원만 올라도 163억원을 챙길 수 있다.
한미은행 관계자는 "대주주가 된 칼라일그룹은 지난해말 한미-하나은행 합병설이 나돈 이후에도 주가가 별 움직임이 없자 고심 끝에 CEO 교체를 통한 주가올리기 전략을 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봉 30억원씩을 받고 있는 제일은행의 윌프레드 호리에행장은 지난해 3월 413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았다. 1998년 10월 '월급 1원에 스톡옵션 40만주'로 영입된 김정태(金正泰) 주택은행장은 당시 주당 3,500원이던 주가가 최근 3만원에 육박, 7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윤종용(尹鍾龍) 부회장이 연봉 10억원 대(스톡옵션 10만주)의 대우를 받고 있다. 이학수(李鶴洙) 삼성구조조정본부 사장과 김인주(金仁宙)구조조정본부 부사장도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찍이 세간의 화제가 됐던 휠라코리아의 윤윤수(尹潤洙)사장은 지난해 24억원대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국내 대부분 은행과 기업의 CEO들은 연봉 1억5,000만~4억원에 스톡옵션 5만~15만주로 이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상태다. 미국에서 CEO와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격차는 35배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8배다.
▲ 전문CEO 배출시스템 구축 시급
선진국들은 CEO 배출을 위해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몰톤&피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기업들이 경영자 교육을 위해 들이는 비용은 연간 10억달러(1조3,000억원)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전문CEO'들을 육성할 체계적인 시스템이 매우 취약한 상태다. 국내 기업설명회나 해외 로드쇼에서 CEO들이 전문지식 부족으로 쏟아지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삼성경제연구소 한창수수석연구원은 "대부분 국내 기업들이 외부 수혈보다는 주로 내부 승진을 통해 CEO를 선발하는 '순혈주의' 풍조가 만연, 실력있는 CEO가 육성되지 않고 있다"며 "CEO 교체가 잦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CEO 몸값을 일반적인 연봉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며 "천박한 평등주의가 능력있는 CEO영입을 방해하는 사회가 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박윤수전무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관치형 경제에다 재벌총수 1인 지배체제였기 때문에 전문경영인들의 역할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CEO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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