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은 물론 침팬지다.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99%를 공유한다. 그러나 침팬지가 국가를 세우거나, 왕을 옹립하거나, 대규모 전쟁, 종족말살, 농사. 가축, 노상강도를 가질까? 아니다.인간만이 이런 일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개미한테 벌어진다. 물론 개미는 무척추동물이고 우리는 척추동물로 서로 많이 다르지만 인간이 역사 끝에 풀어낸 여러 문제의 해답과 개미가 써낸 해답은 아주 비슷하다.
우리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한다. 600만 년 전 침팬지 조상과 인간 조상이 갈라진 후 불과 1만년 전 농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만물의 영장이 됐다.
인간 역사의 나머지 599만 년은 별볼일 없는 원숭이족에 불과했다. 반면 동물세계의 지배자는 곤충, 그 중에서도 개미다. 개미들은 자기보다 훨씬 큰 말벌인 전갈조차 동시에 달려들어 사냥을 한다.
그러나 여기엔 희생이 필요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리로 굴 문을 막고 자기 집 개미가 아니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는 보초 개미, 나무 이파리를 엮어 방을 만들기 위해 애벌레 고치의 명주실을 짜내는 베짜기개미, 꿀을 뱃속에 넣고 있다가 겨울에 게워서 동료를 먹이는 꿀단지개미 등은 분명 대단히 희생을 잘 하는 개미들이다.
이때 베짜기개미 고치나 꿀단지개미는 차출되는 것이지만 사익보다 공익이 절대 앞서는 동물로 진화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기본적으론 개인적이다.
가장 큰 희생은 번식희생. 산처럼 큰 여왕개미나 일개미나 유전적으로 똑 같은 여자로 태어나지만 일개미는 평생 일만 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 윌리엄 해머튼의 해석은 유전자가 더 많은 복사체를 남기는 데 유리하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여왕개미는 수정란을 낳으면 암컷(일개미)을 낳고 미수정란을 낳으면 수컷을 낳는다. 인간은 부모 양쪽으로부터 절반씩 유전자를 받아 형제 자매간 유전적 연관 관계가 평균 50%지만 개미는 딸들(일개미)간 유전적 연관관계가 75%다.
즉 일개미가 자기 딸을 낳으며 유전자의 50%가 복제되지만 여왕개미로 하여금 자기 누이동생을 낳게 하면 75%의 유전자가 전달되는 것이다.
혼인비행을 마친 여왕개미는 굴 속에서 약 20마리의 일개미를 만들어 밖으로 내보내야 살아 남는다.
그 전에 자기 영양분을 소모해 버리면 모두 같이 죽는다. 실패하는 개미들이 99%다. 일단 이 단계를 넘어가면 가능한 한 많은 음식과 물자를 끌어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때로 남의 굴에서 알 애벌레 번데기를 훔쳐와 노예로 쓴다. 고치에서 깨어난 아기개미들은 여왕개미의 화학물질로 목욕을 시키면 '내 엄마'인 줄 알고 평생 충성을 바친다.
만약 개미의 인식체계가 인간과 같다면 거울을 보고 "일하는 건 전부 검은 개미네"하면서 자기 인식을 할 것이다.
그러나 개미의 인식체계는 시각적이지 않고 화학(후각)적이다. 냄새를 조절하는 뇌를 마비시키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개미는 걸어다니는 화학공단이다. 여러가지 화학물질 분비샘이 있고 무엇을, 얼마씩 섞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조합을 만든다.
화학물질이 단어라면 단어를 조합해 엄청나게 복잡한 언어를 쓰는 것이다. 인간이 아는 것은 무슨 단어를 쓰냐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인간은 개미에게 말을 걸 수 있다. 개미의 화학물질을 분리해 종이 위에 문질러 놓고 기다리면 개미를 원하는 곳으로 오게 할 수 있다. 개미가 "이제 보니 인간이 말을 한 거네?"라고 대꾸하기 시작하면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알면 사랑한다. 개미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아는 사람은 쉽게 개미를 밟고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연을 알아가는 일에 종사하고 그 지식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인간과 환경은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강연 이모저모
한국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동원증권, ㈜팬택, 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월례 과학강연 '사이언스 어드벤처 21' 제7회가 19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렸다.
최재천(崔在天ㆍ47ㆍ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개미와 인간-누가 누구의 답을 베꼈나?'를 주제로, 인간과 너무나도 흡사한 사회를 유지하는 개미의 생태를 소개했다.
"산과 들로 뛰어다니면서 연구하는 과학도 있습니다. 개미 연구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죠. 약간의 용돈과 튼튼한 다리, 그리고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머리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청셔츠와 카키색 등산조끼, 그리고 베이지색 면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최 교수.
금방 등산을 다녀온 듯한 모습의 그는 "복장이 상당히 불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든 과학자가 흰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서만 과학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학자와 대중의 거리는 결코 멀지 않았다. 최 교수를 통해서 생물학자에 대한 꿈을 키워가거나 개미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던 보통 사람들에게, 그는 인기연예인 못지 않은 '스타'였다.
강연과 질의응답이 끝나자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어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몰려들었다.
강수지(17ㆍ서울 홍익여고 2)양은 최 교수가 "이름이 낯익은데"라며 올 스승의 날 e-메일을 보낸 것을 기억하자 기뻐했다.
강 양은 "지난 해 3월 학교에서 최재천 교수의 강연을 처음 들었다"며 "대학에서 생물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도 최 교수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최내숙(여ㆍ경기 안양시)씨는 "개미나 곤충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생물학자가 되도록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최 교수는 "학자는 보고 관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릴 줄 알아야 한다"며 "국어, 영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 초등학생은 '노예개미가 화학물질로 세뇌를 당하는 과정'에 대해 물었고, 최 교수는 "개미의 신경세포가 화학물질에 어떻게 반응해서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앞으로 개미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통해서 제기된 '인간 유전자의 일부가 박테리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에 대해 질문한 박창경(경기 고양시ㆍ외신 기자)씨에게는 "인간유전자중 상당 부분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다른 생명체에서 왔을 것으로 보인다"고 대답했다.
"집안에 개미가 나타나면 바퀴벌레가 보이지 않는데, 왜인가요?"(변혜진ㆍ보성여고 2) "할아버지 산소에 소나무 이파리 썩은 것으로 집을 짓고 사는 불개미가 있는데 개미는 집을 땅속에 짓는 게 아닌가요?"(윤상영) 일상에서 눈여겨 보았던 개미의 생태에 대한 궁금증이 이어지자 최 교수는 "개미를 두려워하지 말고 애정을 갖고 대할 것"을 당부했다.
최 교수는 "개미는 나무, 도토리 등에도 집을 짓고, 심지어 아파트 안에도 들어와서 산다. 개미와 함께 살면 바퀴벌레를 없앨 수 있다"며 "나는 개미가 집에 들어오면 자연이 나를 찾아들어온 것에 대해 고마워하며 아이와 함께 관찰일지를 쓴다. 자연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어머니 박현숙(37ㆍ여ㆍ서울 강동구 암사동)씨 등과 함께 온 가족이 함께 강연을 들은 김호경(명덕초 3)군은 "개미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앞으로 개미나 곤충을 많이 관찰하겠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최재천 교수는
재치있고 설득력 넘치는 말솜씨와 글 재주로 개미와 자연생태계에 대한 사랑을 전파하는 최재천 교수는 EBS TV의 강연과 주요 일간지 칼럼으로 대중과 친숙한 과학자이다. 전공 분야인 동물행동학을 통해서 인간사회를 들여다보는 시각이 날카롭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찾은 중미의 정글에서 꽃잎을 물어나르는 가위개미, 합종연횡식 정쟁을 보여주는 아즈텍 개미 등 개미의 생태에 빠져들었다. 그가 펴낸 교양서적 '개미제국의 발견'은 국내에서 개미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석사를 마쳤다. 개미를 비롯해 각종 사회성 곤충과 거미, 까치, 조랑말 등의 사회구조와 생태, 동물의 인지능력과 인간두뇌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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