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때 나는 한 동안 '강아지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염세주의의 깊은 늪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던 시절이었다. 꿈에 부풀어야 할대학생활이었건만 삶의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 당시 나는 종종 커다란 강의실에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저만치 앞쪽 교수님 가까이 모여 앉아 강의를 듣고 있는데 맨 뒷줄 창문 가에 앉아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교수님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가끔 "어이, 저 뒤에 강아지풀"하고 날 불러 질문을 하시곤 했다. 물론 한번도 제대로 대답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왜 그 때 늘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고 다녔는지에 대해서 정신과학자들의 진단을 들어보면 여러 가지로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종종 강아지풀을 물고 담배를 피우는 시늉을 하곤 했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문학청년의 흉내를 내던 나였기에 친구들은 날 보며 폐병 말기에도 불구하고 축축한 하숙방에 틀어박혀 줄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을 연상하곤 했다. 그럼에도 평생 단 한번도 담배를 입에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나의 독함에 그들은 치를 떤다.
지금은 장안 제일의 MC로 활약하고 있는 내 고등학교 선배가 도서관 옆 화장실 뒤에서 감칠 맛 있게 던진 유혹에도 나는 넘어가지 않았고, 동네 뒷골목 친구들의 불장난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단 한번이었지만 엄격하고도 간곡했던 아버지의 청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술은 좀 마셔도 좋지만 담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당신은 담배를 피우시면서 내게 어떻게 그런 부당한 요구를 하셨는지 모르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의학적으로 완벽한 건강 처방이었다. 술은 적당히 하면 몸에 좋지만 담배가 백해무익임은 이제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담배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숨줄을 갉아먹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집계에 따르면 흡연으로 한 해 400만 명이 죽는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그 중의 상당수가 바로 우리 한국인이다. 우리 나라 성인 남자 흡연율은 68.2%로 단연 세계 1위이며 청소년 흡연도 지난 10여 년간 급속히 증가하여 급기야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5월 2일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월간 '건강 길라잡이'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 나라 남자 고등학생의 흡연율은 27.6%로 아시아-태평양권의 싱가포르(3%)나 일본(8%) 같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23%)이나 대만(24%)에 비해서도 훨씬 높았다.
여고생의 흡연율(10.7%)도 최고를 기록했고, 중학생들의 흡연율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6700만 갑의 담배를 약 50만 명의 중고생들이 빠끔거렸다는 결론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한결같이 흡연퇴치운동을 벌여 많은 효과를 얻고 있는 마당에 우리 나라는 이것마저 오히려 후진국으로 퇴화하고 있다.
섹스 스캔들로 얼룩은 졌을 망정 전례 없는 경제호황을 이룩하여 역대 가장 유능한 대통령 중의 하나로 평가 받는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그의 최대치적이 금연운동으로 국민건강을 증진시킨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따라다닌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미국 남성의 흡연률이 34%에서 28.1%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흡연율의 감소가 경제지표로 당장 나타나는 것 외에도 건강증진으로 인해 먼 미래에 얻을 경제적 이득을 감안하면 클린턴의 치적은 더욱 엄청나다.
진화의 역사를 놓고 볼 때, 보다 간단한 동물에서 복잡한 동물로 갈수록 일단 공기를 몸 안으로 끌어들인 후 호흡을 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아직도 많은 동물들이 피부에서 직접 산소를 교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다 기체교환을 담당하는 특정한 기관을 가지고 있다.
많은 양서류 동물들은 몸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아가미를 갖고 있다. 그러다 어류에 이르면 아가미가 몸 안쪽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어류의 아가미는 언제든 개방하여 물에 씻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파충류, 조류, 그리고 포유류는 모두 체내에 폐를 지니고 있다.
기체교환 기관을 몸 안에 두는 것에는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다. 뭍에서 살다가 물 속으로 돌아간 고래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하늘을 정복한 새들에게도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동물들이 체내에 폐를 갖게 되는 동안 오염된 공기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는데 우리의 비극이 있다.
물론 우리의 기도에는 가는 털들이 나 있어 이물질이 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준다. 하지만 워낙 미세하여 그들의 방어망을 뚫는 것들이나 그 밖의 여러 화학물질들에 대한 대비책은 적응단계에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였다.
만일 그런 문제들이 있는 상황에서 폐가 진화했더라면 아가미처럼 쉽게 공기에 씻길 수 있거나 인위적으로라도 가끔 필터를 갈아 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런 구조적 결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인간은 담배까지 피워 애써 이물질을 폐 깊숙이 밀어 넣는다. 흡연은 한 마디로 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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