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광주민주화항쟁 21주년을 맞아 당시 공수부대원이 비무장민간인을 사살, 암매장했다는 양심선언이 발표됐다.이는 그간 숱한 의혹에도 불구, "당시 공수부대원에 의한 비무장민간인 사살 및 암매장은 없었다"는 당시 부대장의 국회 청문회 증언 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출범 이후 가해자에 의한 양심적인 제보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직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는 18일 "지난 80년 광주항쟁 당시 공수부대원이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제보를 최근 접수, 확인하는 과정에서 당시 7공수여단 모대대 출신 40대 남자로부터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 이에 대한 사실확인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문사규명위에 따르면 지난 80년 5월22일께 당시 7공수여단이 주둔 중이던 주남마을 근처 광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저수지 부근에서 광주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매복하던 공수부대원 5명이 지나가던 민간인 4명에게 총격을 가해 55년생으로 알려진 한 민간인 남자가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고흥으로 김매러 가는 중이었다"고 알려진 이들 민간인은 군인들의 "서라"는 명령에 도망치다 총격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노부부 두 명은 체포후 석방됐고, 다른 20대 남자는 야산을 통해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시 중대장의 발포 명령을 받고 조준사격을 가했던 이 부대원은 "사살 직후 사망자의 인적사항을 상부에 무전으로 보고한 뒤, 암매장 지시를 받아 이를 실행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져 조직적인 민간인 사살과 은폐기도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규명위 관계자는 "당시 사체는 1차 암매장후, 마을주민에 의해 한번 더 옮겨졌고 2~3일 뒤 가족들이 찾아와 최종 이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증언을 토대로 5ㆍ18묘역 등에 확인 결과, 현재까지 사망자는 5ㆍ18특별법에 의한 보상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신원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규명위는 오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며 직권조사가 결정되면 위원회는 법에 의해 6개월간 심층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규명위 김학철 특별조사과장은 "이 사건은 그동안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묻혀진 역사'"였다며 "앞으로 양심적 제보를 통한 적극적인 조사와 함께 사실과 다른 거짓 자료, 증언에 대한 철저한 확인작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한편 1980년 5월 당시 숨진 55년생 남자의 시신을 수습해주었던 김모(67ㆍ광주 남구 노대동)씨는 "숨진 청년이 5ㆍ18 묘지에 묻히고 유족들이 5ㆍ18 보상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총을 쏜 당사자가 양심 고백, 뒤늦게 나마 진실이 드러나 다행이다"고 말했다.
김종구기자
sory@hk.co.kr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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