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부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18일 발표한 생명윤리기본법(가칭) 기본 골격은 윤리적 논란의 부담을 피하는 범위에 머물렀다.배아 연구의 잠재적 효용을 정확히 측정한 것에 의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일단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냉동배아만을 연구토록 한 것이다. 논란이 많은 초기 배아의 지위에 대해 '잠재적 인간'으로 해석한 셈이다.
-인간배아 연구를 허용한 것인가? 금지한 것인가?
선별적 허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연구자의 시각으로는 '엄격 제한'으로 볼 수도 있다. 자문위원회 황상익(서울대 의대 교수) 운영소위원장은 "복제배아가 아닌 냉동배아로도 똑같이 배아 간세포 연구를 할 수 있다"며 "시안은 원칙적으로 인간배아 연구를 허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배아를 얻는 방법 중에서 체세포를 난자에 결합시킨(체세포 복제기술) 복제배아를 만들어 연구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체세포 복제술로 만든 배아가 왜 중요한가?
초기 배아에서 추출된 간(幹ㆍ줄기)세포는 모든 장기와 조직으로 자라날 수 있는 만능세포이다. 그래서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는 건강한 뇌세포를, 백혈병 환자에게는 정상적인 골수세포를, 당뇨병 환자에게는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세포를 이식함으로써 난치병 치료의 새 장을 열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이 세포치료가 현실화할 경우 복제배아는 면역거부 반응 문제를 해결하므로 효용성은 막대하다.
체세포복제 소를 탄생시킨 황우석(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복제하면 면역거부반응 문제가 전혀 없기 때문에 복제배아 연구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나?
인간복제는 물론 금지되고 동물복제는 허용된다. 잉여배아를 이용하는 연구는 한시적으로 허용되고, 복제배아는 연구는 물론 만드는 것 자체가 금지된다. 성인 남성의 체세포를 복제해 배반포까지 배양한 데 성공한 황우석 교수의 연구도 금지 대상이 된다.
인간과 동물의 교잡행위는 일절 금지된다. 돼지의 유전자에 인간 유전자를 넣어 장기를 생산하는 것도 불허되는 셈이다. 최근 국내외 병원이 다른 여성의 건강한 난자에게서 세포질을 빌려와 이식했다고 밝힌 불임치료시술도 불법이 된다.
-이번 시안은 실제로 생명공학 발전을 저해하나?
이 분야의 권위자인 마리아산부인과 박세필 박사는 "외국 생명공학기업인 ACT사는 동물 난자에 사람 체세포를 결합시킨 기술을 특허출원했다"며 "현실적으로 이미 진행 중인 연구를 모두 불법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뛰어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유전자조작은 금지돼야 하지만 유전질환의 경우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명공학연구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이번 시안은 궁극적으로 성인의 세포에서 추출한 성체간세포 연구로 대체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냉동배아에 대한 연구를 '한시적 허용'으로 못박은 이유도 이 것이다.
구체적 시한은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복제배아 연구는 윤리적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크고, 체세포는 환자 것을 쓴다 하더라도 다른 여성의 난자가 필요하다는 점 등 관리가 수월치 않기 때문에 전면 금지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배아간세포와 성체간세포 연구가 병행돼야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밖에 이번 시안이 다루는 내용은?
개인 유전정보를 보호해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한다. 우생학적 목적으로 태아의 유전정보를 얻는 것을 금지한다. 또 금지된 연구로부터 나오는 기술과 생산물은 특허를 받을 수 없다. 반대로 윤리적 이유로 시민단체 등이 특허무효 심의를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 청원할 수 있도록 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시사용어
▽배아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조직ㆍ기관의 분화가 마무리되는 8주까지의 단계. 영국, 일본 법안은 조직ㆍ기관 분화가 수정 14일쯤부터 시작된다는 근거로 그 이전의 초기배아에 대해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잉여배아
불임클리닉에서는 정자와 난자를 체외수정시키며 다수의 수정란(배아)이 만들어진다. 자궁에 이식하고 남은 것을 냉동해 보관하는데 이것이 잉여배아. 잉여배아는 연구하거나 5년쯤 뒤 폐기처분한다.
▽복제배아
복제양 돌리에 의해 체세포복제가 증명됨에 따라 정자와 난자 없이도 개체탄생이 가능해졌다. 핵을 뺀 난자에 체세포를 결합시킨 수정란을 흔히 복제배아라 부른다.
■생명윤리법 2개시안 존재
이번에 발표된 생명윤리기본법(가칭) 기본 골격안은 말 그대로 법안을 만들기 위한 기본 방향이다.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공청회에서 이 안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 시민의 의견을 수렴한 후,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보고서를 과학기술부에 제출하면 과기부가 구체적인 법 시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한편 보건복지부도 지난해 12월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가칭) 시안을 발표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는 공청회 후 애초에 엄격하게 제한했던 배아연구를 초기배아 연구는 허용하는 것으로 다소 완화,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기 전 부처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어느 부처가 주무부처가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쉽게 협의되지 않을 경우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국무회의에 부쳐질 가능성이 있다. 주무 부처가 결정돼 하나의 법안이 만들어지면 올 정기국회에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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