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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내 소중한 딸 고은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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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내 소중한 딸 고은이에게

입력
2001.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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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고은아.낮으로 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땀방울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 잠시나마 상쾌한 봄기운이 바람에 묻어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계절은 봄을 떠나 여름으로 성큼 다가서는 듯 하다. 다가올 한여름의 무더위에 우리 모두 지치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찾기 어렵구나. 흐릿한 기억만큼이나 고은이에 대한 아빠의 마음도 작아져 가는 것이 아닌가 다시 한 번 반성해본다.

너의 나무람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귀가하는 아빠로서는 네 엄마에게도 항상 빚을 지고 사는 기분이다. 너와 가족들에게 아빠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새삼 부끄럽구나.

고은아. 어린 너를 타역만리 먼 곳으로 보낸 지도 벌써 반 년이 넘었구나.

아빠는 인터넷으로 보스턴에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너의 입학서류를 제출하면서, 또 얼마전 너를 위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여름캠프에 참가신청을 하면서 가슴 뿌듯했던 기억을 갖고 있단다. 비록 너의 e-메일에 꼭꼭 답장하겠다던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아빠가 항상 널 생각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또, 아직 아빠에게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네가 오히려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네 염려 덕분으로 아빠는 오늘도 건강하고, 분주하게 잘 지내고 있단다.

얼마 전 전화통화에서 '어느 대학을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피아노를 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던 네 말이 새삼 기억나는구나. 아빠도 네게서 배운 것처럼 얼마나 큰 회사를 만드는가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생각하면서 일하려고 노력한단다.

가끔은 목표 성취의 기쁨에 자만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소중함과 의미를 간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아빠는 네가 한 말을 떠올리며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되짚어보곤 한단다.

물론 아빠도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이만하면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사랑하는 너와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고, 새롭게 의지를 다지곤 한단다. 고은이도 먼 타지에서 홀로 지내기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나와 가족들이 항상 너를 염려하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씩씩하게 생활해주기 바란다.

내 딸 고은아.

밤이 늦었구나. 경제가 다소 어렵다고 하지만, 테헤란로의 밤은 여전히 분주하단다. 이 테헤란로 한 켠에서 네게 짧은 편지 한 통을 적어 보내는 잠시의 여유가 아빠에게는 무척이나 생경하면서도, 행복하구나.

비록 몸은 함께 있지 않더라도 아빠는 언제나 너를 자랑스러워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 기억해주기 바란다. 부디 몸조심하고, 다시 만나는 날까지 밝고, 건강하게 보내자꾸나.

고은아. 사랑한다. 서울에서 아빠가.

李今龍 옥션 대표이사 인터넷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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