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보건복지부의 과장급 이상 실무 책임자들에 대해 징계를 결정한 것은 의약분업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파탄 위기가 정책판단의 잘잘못을 떠나 기초적인 실무 뒷받침조차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최고 정책결정자들은 그대로 둔 채 힘없는 실무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이어서 책임공방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내에서는 벌써부터 "관련 부처간 다 협의해 놓고 우리한테만 책임을 덮어 씌운다"는 반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25일간 139명의 인력을 투입,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대한 대대적 특감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시행한 건강보험 수가인상 등은 재정지출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보건복지부등이 이에 대한 대책수립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특히 정책결정 과정에서 필수적인 통계나 분석자료를 부실하게 작성, 정책 실패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약분업을 주관한 보건정책국과 연금보험국의 실무 간부들에게 책임을 물어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차흥봉(車興奉)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서는 당시 의약 분업을 앞장서 주장하고, "의약 분업을 실시해도 국민들의 추가 부담은 없다"고 주장했음에도 검찰고발 등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장관의 경우 감사원의 징계 대상이 아니다"며 "1997년 외환위기와 관련, 고발됐다 무죄를 선고받은 강경식(姜慶植) 전 재경 부총리의 경우에서 보듯 정책 실패를 문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감사의 포인트는 의약분업 시행에 대한 정책 판단의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라, 의약분업에 대비해 실무자들이 적절한 준비와 대책을 세웠느냐 여부를 검토하는 직무감사라는 게 감사원의 입장이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복지부 의보 실무책임자는
감사원이 국민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주 원인으로 보건복지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보고 축소 및 은폐' 등을 들고 징계방침을 정하면서 당시 '의란(醫亂) 책임자'들에게 다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 당시 장관과 차관은 차흥봉(車興奉), 이종윤(李鐘尹)씨. 감사원이 "추가 의료비 부담은 없다", "약물 오남용 감소" 등 일관된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인물로 지적한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의료계 파업 사태의 책임을 지고 함께 물러났다.
처방의약품 비치 등 의약분업 준비를 위한 실무 작업은 기획관리실 소속 보건정책국에서 맡았다. 3월 차관으로 승진한 이경호(李京浩)실장 밑에 송재성(宋在聖)국장이 실무를 총괄했고, 안효환(安孝煥)약무식품정책과장은 의약분업 시행의 장ㆍ단점을 파악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자리에 있었다.
집단 파업을 벌인 의료계를 울리고 달랜 부서도 보건정책국이었다. 송 국장은 공교롭게도 최선정(崔善政) 전 장관 부임이후 보건정책국과 함께 복지부내 양대 핵심부서로 꼽히는 연금보험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안 과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안전국장으로 있다가 최근 공보관으로 복귀했다.
보험재정 위기를 가져 온 5차례의 수가 인상은 연금보험국 소관이었다. 당시 국장은 김태섭(金泰燮)현 가정보건복지심의관과 송재성 현 국장이 번갈아 맡았었다.
'의란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이들은 화살이 자신들에게 겨눠지고 있는 데 대해 한결같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간부는 "의약분업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 등을 제때 세우지 못한 것은 일부 인정하지만 '부작용 고의 은폐' 운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책임자들의 축소ㆍ은폐로 IMF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재현된 꼴"이라며 "이들은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 의사들을 살 찌운 장본인들인 만큼 책임소재와 처벌을 분명히해야 한다"고 소리높이고 있다.
김진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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